영화 ‘홍이’
영화 <홍이>는 30대 여성 ‘이홍’이 빚과 불안정한 고용 상태를 해결하기 위한 최후의 수단으로 재산이 있는 어머니를 양로원에서 데려오면서 일어나는 일을 그린 다큐멘터리, 아니 영화다.
노인 부양과 고용 불안정의 문제를 개인의 관점에서 풀어내는 이 영화는, 짧은 러닝타임에도 불구하고 ‘이홍’과 그녀의 엄마를 둘러싼 문제를 효과적으로 설명해 낸다. 무엇보다도, 요양원, 이름 쓴 팬티, 네일, 바나나 식초 등 일상적이면서도 중요한 소재를 자연스럽게 이야기 속에 들이고, 주요한 갈등의 흐름을 구성하는 것이 탁월하다.
무엇보다도 인물들 간의 팽팽한 감정적 갈등이 직접적이지 않아도 뚜렷하게 묘사된다. 갈등의 완급조절 역시 적절하게 되어, 관객은 확실하게 이야기에 몰입할 수 있다. 노인 부양이라는 소재와 그를 둘러싼 현실적인 갈등 묘사가 불쾌함과 피로함을 유발하지만, 모든 인물에 대한 공감을 끌어내기도 해 절대 싫어할 수 없는 작품이기도 하다.
영화를 이끌어가는 이홍이라는 인물의 개인적 성격과 엄마인 서희와의 관계가 인상 깊다. 두 인물을 중심으로 영화에서 눈여겨볼 만한 지점을 짚어보았다.
부지런한 치매, 사지 멀쩡한 무기력
영화의 제목은 주인공 이홍의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는 표현인 ‘홍이’다. 제목이 보여주듯 이야기는 이홍을 중심으로 진행되고, 엄마와의 일 외에도 경제적 위기, 고용 불안, 외로운 등 그가 삶을 살아내며 경험하는 여러 고충에 집중한다.
그러나 이홍의 생활을 따라가 보며 느껴지는 감정은 그에 대한 연민 또는 무한한 공감이 아니라, 홍이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한 의문이다. 그는 고단한 생활을 보내며 여러 마음의 짐은 지고 사는데, 그렇다고 해서 모든 순간에 최선을 다하거나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는다.
엄마의 재력에 기대기 위해 양로원에서 엄마를 데려왔지만, 홍은 엄마와 최소한의 살가운 대화도 나누지 않는다. 불편한 존재를 무미건조한 대화로 잠재우는 방어적인 태도가 보이기도 한다. 이런 그의 방어적인 태도는 그가 억울하게 오해를 사 해고를 당하는 상황에서도 드러난다. 한마디 할 법도 한데 그저 받아들인다. 더 큰 소란을 만들고 싶지 않은 듯.
그러나 한편 엄마는 어떤가? 치매 초기 증상을 겪으면서도 ‘치매에 좋은 것이라며’ 바나나 식초도 만들고 좋든 싫든 자신을 돌봐 주기로 한 동생과도 성실히 노인 센터 프로그램에 참석한다.
무엇보다도 요양원에서 나오는 순간부터 바깥세상의 온갖 것들을 촬영할 정도로 요양원 밖의 생활을 좋아하면서도 결국 다시 요양원을 ‘집’이라 칭하며 딸의 마음의 짐을 덜어주는 모습은 그의 헌신적인 삶을 엿볼 수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관계 맺기에 실패한 가족
엄마와 딸의 끔찍한 공통점이라고 하면 관계 맺기에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다. 엄마는 딸을 향한 뜨거운 마음이 있다. 윗세대의 화법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엄마가 홍에게 하는 말들은 홍을 걱정하거나, (잘 산다는 게 무엇이든) 어쨌든 홍이 잘 살기를 원하기 때문에 하는 훈계이다.
그러나 엄마의 말은 날카롭기 때문에 청자를 단단히 비껴간다. 즐겁고 편안한 분위기를 조성하려는 동생의 시도에도 속상한 과거를 말해버리거나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홍 역시 이기적이고 타인과의 관계 맺음의 메커니즘을 이해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사람이다. 일하는 곳에서 친하게 지내거나 살가운 말을 덧붙이는 사람이 등장하지 않는다. 연인은 깊은 교류가 없고 앱을 통해서 만나는 것. 그렇다고 해서 약삭빠르게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것도 아니고 그저 조용히 살아간다.
이 둘의 성격이 일치하는 지점은 자신들이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를 돕다가 분노한 사람에게 금전적 보상을 먼저 시도하는 것이다. 미안하다는 감정과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타인에게 필요한 것이 돈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이들이 관계 맺기에 항상 실패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영화 <홍이>와 관련하여 기억에 남는 것은 상영 전에 스트레스 볼을 선물로 받은 것이다. 이 문제가 절대 모른 척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나의 일이기도 하기 때문에 영화를 보며 정말 몰입했고 너무 스트레스를 받았다.
사회 시스템의 부재와 노인 부양 불가한 현대 사회의 경제적 구조 속에서 어떻게 가족의 신체적, 정신적 무너짐을 견딜 수 있는가? 그런 고민거리를 던져 주는 영화다.
원문: #아트인사이트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775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