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든 원칙대로 해야 하고 지정된 방식대로 따라가지 못하면 큰일 나는 줄 알던 나의 고지식함을 생각하면, 동요 ‘피노키오’의 가사를 듣고 왠지 나이보다 너무 성숙한 슬픔을 느꼈던 것도 이해가 된다. 나에겐 이상적인 세계 안에서 사는 것에 대한 불안한 욕망이 고질적으로 있어 왔다.
블랙미러의 새로운 시즌(누군가는 내게 그 시리즈가 아직도 나오냐고 했다. 나도 놀랍다)의 아름다운 이야기 ’레버리 호텔‘을 봤을 땐 오랜만에 피노키오 생각을 할 수 있었다. 특히 연인이 둘 뿐인 세상에서 방황하지 않고 행복한 생활을 누리는 컷들이 이어지는 몽타주가 그랬다. 그게 바로 피노키오였다.
요즘은 방해받지 않는 사랑에 대한 생각도 한다. 그런 게 존재하기나 할까? 고지식하여 누군가 ‘이렇게 해도 돼’ 하기 전 까지는 절대 그 ‘이렇게’를 감히 생각도 하지 않는 나에게 그런 것은 응당 존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하지만 나는 그런 것을 꿈꾼다. K와 생계 걱정은 전혀 하지 않고 퍼즐과 수영과 숯불구이 치킨으로만 채우는 생활 말이다.
그나저나 레버리 호텔의 미묘하고도 탁월한 점을 설명하자면, 고전영화 속에 박제되어 있던 도로시를 입체적인 인물로 만들어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브랜디가 ‘여배우’의 한계를 뛰어넘고 입체적인 인물이 되고자 했던 욕망이 도로시를 살아 숨 쉬게 했다는 점이 특히 인상적이다. 그리고 다시 고전적인 신파로 끝나는 (영화 속) 엔딩. 아름답다는 말만이 설명할 수 있는 에피소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