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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영 Jul 25. 2022

모르는 외국인이 내 일기장을 본다

Welcome to America (feat. 입국심사)

한 달간의 여행을 하러 뉴욕으로 떠나는 길

경유지인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도착하게 되었다.


입국심사를 기다리는데 앞사람의 심사가 생각보다 길다.

이것저것 많은 걸 물어보는 듯하다.

그러니 나는 '최대한 의심 안 받게 모든 걸 솔직히 얘기해야겠다.'

생각을 하던 중 나의 차례가 되었다.


"어디로 가시죠?"


"뉴욕이요"


"어떤 목적으로 오셨죠?"


"한 달간 여행하러 왔어요."


"도착지에 아는 사람이 있나요?"


"아뇨, 없습니다"

(여권을 훑어본 뒤 잠시 후 어딘가로 전화를 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서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어떤 보안관 복장을 한 사람이 나를 어떤 사무소로 안내했다. 심층 입국 심사를 진행하러 가는 것이다.

도착했을 땐 한 여행객으로 보이는 다섯 분 정도가 앉아서 대기하고 있었고

개중에는 영어를 잘못하는 사람도 보였다.


갑자기 보안관이 어떤 여자분에게 소리친다


"핸드폰 집어넣어요!"


그제야 앞에 핸드폰 사용금지 싸인이 보인다. 이민 사무소 보안상 못쓰게 하나보다.


몇 분 후 내 차례가 되어 호명을 받고 카운터로 갔다. 여러 질문에 답변을 하고 지시에 따라 핸드폰도 맡겼다. 잠시 자리로 가서 기다려달라고 한다.


잠시 후 또 호명을 받았는데.. 이번엔 어느 폐쇄된 사무실로 들어오라고 한다.

이때부터 뭔가 느낌이 좋지 않았지만 그래도 오래지 않아 끝날 거라고 '착각'했다.


사무실에 들어올 때 내가 가져온 짐을 들고 들어오라고 했다. 그러더니 책상 위에 짐을 올려놓게 한다.

보안관이 구석 자리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한다.


"지금부터 우리가 너의 가방을 수색할 거야. 어떠한 경우에도 그 자리에서 일어나지 마."


뭔가 잘못되어가고 있음을 직감했다.

난 잘못한 게 없는데 철저히 뭔가에 대해서 의심받고 있구나 생각이 들었다.


보안관이 수색을 하면서 질문을 시작하는데 태도가 이전 직원과 달랐다.. 단지 궁금해서 묻는 질문이라기보다 ‘의심’을 전제로 한 질문 아닌 질문이 이어졌다.


"여행비는 얼마나 가져왔어?"

"숙소비 제외하고 120만 원 정도요."

"그걸로 한 달 동안 여행을 한다고?"

"…네"


곧이어 다른 직원이 오더니 유도심문을 한다.


"너 인터뷰 보러 뉴욕에 가는 거지?"

"아뇨"

"그럼 왜 정장 재킷이랑 흰색 셔츠를 챙겼어?"

"그냥 여행할 때 입으려고요"

"거짓말 마. 누가 여행하는데 이런 옷을 챙기지?"


거짓말 안 하고 정말 이렇게 심문했다. 마치 내가 범죄자 취급을 받는 느낌이었다.


"솔직히 말해. 너 인터뷰 보러 가는 거지?"

"아니라니까요. 한 달간 여행하러 왔어요."


이후에 심문(?) 과정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이때이다.

그들은 나의 일기처럼 기록하는 작은 노트를 발견하고 이해 못 하는 한국어를 구글 번역기까지 써가며

내 앞에서 읽는 것이다... (구글 번역기 카메라 자동 번역 기능)

그때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번역기의 한계가 있기 망정이지 남의 일기를 대놓고 읽다니.

미국 샌프란시스코 이민 사무소에서는 여행객에 대한 인권보호가 적용되지 않는 것인가?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의 초입에서부터 저런 모습을 보다니 참 웃프지 않을 수 없었다.


삼십 분가량 이러한 질문을 받다가 잠시 기다리라고 한 뒤 위와 같은 질문들을 여러 번 되풀이했고 나는 처음에 의심받는 게 억울하고 답답해서 조금 언성을 높였다.  하지만 거기에 되돌아오는 건 더 강압적인 압박과 심문이었다. 추가적으로 일부 보안관들은 얼굴이 울그락붉그락해서 위압감마저 들었다.


그렇게 세 시간이 넘게 흘렀고 나는 조금씩 지쳤다.

나는 이내 이 사람들을 내가 이전에 가지고 있던 상식을 내려놓고 보기로 결심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감정적으로 흥분할 거 같았기 때문에.


보안관도  마치 골칫거리인 것처럼 느끼는듯했다.

그들끼리 얘기하는 걸 봐서는 이민 사무소 프로토콜상 나는 그냥 보내면 안 되는 케이스인 듯했다.


"자 솔직하게 말해. 우린 너에게 기회를 주는 거야. 인터뷰 보러 가는 거는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아. 하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구속될 수도 있어. 너도 그걸 원하지 않지?"

(마지막 자비를 베푸는 듯한 어투로 물어본다)


"네, 솔직하게 얘기할게요."


"좋아, 너 인터뷰 보러 뉴욕에 가는 거지?"


"아니요."


이 정도면 질문과 심문을 넘어 거의 협박의 수준이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이렇게 할수록 더욱더 거짓말은 할 수 없었다. 이들은 어떻게든 나를 인터뷰 보러 가는 사람으로 마무리 지으려는 거 같았지만 솔직하게 말하지 않으면 구속된다는 말에 더욱더 그렇다고 할 수 없었다.


종국엔 여행 중에 유대인에게 부탁하여  'Parenting'에 대해 배울 계획이 있다고 얘기했다.

여행 중에 내가 뭘 하든 그건 내 자유이기에 그것까진 말할 필요가 없었겠지만.

'솔직'이라는 말에 강박이 생긴 걸까. 굳이 얘기 안 해도 될 얘기들까지도 꺼내게 되었다.

그 말을 들은 보안관 표정을 보았을 때의 나의 감정이 떠오른다.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이 있다는 표정..


곧 수퍼바이저라 불리는 사람 사무실에까지 들어갔다.

비교적 인자한 분위기 였지만 의심은 여전하다.


"유대인의 가정교육을 배울 거라고? 아는 사람도 없다면서?"

"아는 사람이 없지만 찾아서 부탁해보려고요."

"그게 될 거라고 생각하니? 그 사람들이 얼마나 폐쇄적이고 외부인을 경계하는데."

"그런 건 잘 몰라요. 하지만 시도는 해보려고요."

"됐어, 그 얘긴 접어두고 뉴욕에서 진짜 뭘 하려는 거야!?"

"말했듯이 한 달간 여행이요. 저건 여행 계획 중 일부인 거고요."


쳇바퀴 마냥 반복되는 질문과 대답 끝에 다시 나와 대기하라고 한다.


후에 이 발언으로 꼬투리를 더 잡기도 하였다. 말을 바꾼다면서..


마침내 내가 한 말이 모두 진실이라는 서약(?)을 한 후에 다섯시간만에 풀려(?) 날 수 있었다.


당연히 원래 계획 되어있던 뉴욕행 환승 비행기는 오래 전 놓쳤으며 다행히 이민사무소 측에서 새 비행기 일정으로 티켓 변경을 해주도록 조치해주었다. 덕분에 일곱시간 가량을 더 기다려야 했지만..


미국에 도착하자마자 한동안 사용하지 않았던 나의 영어회화가 복원되는 것을 느꼈다.

나의 뉴욕 여행은 시작부터 스펙타클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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