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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영 Oct 02. 2021

나에게 쓰는 편지

미국 샌프란시스코행 비행기 안에서

난 이번 여행 충분히 준비 안 하고 왔다고 생각해. 충분히 준비했을 때는 언제가 될지 모르니까.

게으른 완벽주의자는 끝나는 시간이 필요해. 그렇지 않으면 실재하지도 않은 완벽해 지기까지 할 수 있는 만큼 질질 끌 거니까. 미국행 비행기표를 끊어서 데드라인을 걸었는데도 그다지 열심히 하지 않았어. 더 이상 준비하는 게 의미 없다고 생각되어서인지 몰라도 즉흥적인 게 좋았는지 몰라도 그냥 편안하게 누워 있고 싶을 때 눕고 먹고 싶을 때 먹고 핸드폰에 온갖 것들을 소비하면서 늘어지게 게으름을 피웠지.


어떤  때문일까? 시간은  흘러가는데 그걸 제대로 인지하지 못할 정도로 안락함에 익숙해져서 나에게 득이 되지 않는 것들에 집중할 때 그때의 지루함이라던가 어떤 고통스러운 느낌을 순간적으로 없앨  있기 때문에?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졌는데 그런  의식할 때마다 내가 하고자 하는 유대인 가정교육을 배우는 것과 그걸 다른 사람들과 나누는  헛되고 별로 남는  없을 것처럼 그리고 내가 생각하는 최상의 시나리오는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지더라고.


그때 난 나 자신을 못 미더워했고 하루하루를 대충 보내는 나 자신을 꾸준히 보다 보니까 말이야. 난 이 정도에서 더 이상 나아질 수 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고 그게 내 무의식에 각인되는 것 같았어. 그래서 내가 하고 싶었던 일이 고작 이 정도인 나에게는 흐지부지하게 시도하다 끝날 일처럼 느껴졌어.


이상하게 집에서는 이런 일기가 쓰고 싶지 않았는데 조용한 비행기 안에서는 솔직하게 잘 써지네.

이렇게 글을 쓰고 나니까 그래도 불안한 마음은 조금 없어진 것 같아.


대략 이런 분위기에서 글을 썼다. 어두워진 비행기 내부에서 책을 읽는데 독서실 온 것 같은 느낌이다. 하늘에서 책 읽는 감성.


나는 비행기를 타고 가면서 불안했다. 퇴사하고 그다음에 뭘 할지 확실한 결정을 내리지 않고 그냥 당장 하고 싶은 걸 하고 있는 내가 이걸 지금 하고 있는 게 맞는 걸까 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고 내가 계획했던 일이 잘 될까라는 의구심도 계속 들었다. 퇴사 후 공백 기간이 길어질수록 내 불안은 점점 더 커질 것이다. 다만 실패하더라도 이번에 도전해보지 않으면 나중에 후회할 거란 확신은 있었다. 나는 나 자신을 안심시키고 확신을 주어야 했다.



잘 들어.


스트레스를 너무 받는다면 이걸 잘해야 한다는 생각은 내려놔. 처음에 이걸 하려고 했을  그냥 순수하게 배우고 싶었던 거잖아.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고 있는 부모가  미래의 내가 불안해서 유대인 교육을 현장에서 보고 듣고 그걸 체득하고 기록해서  좋은 부모가 되고 싶은 거잖아. 그리고 뭐가 됐든 너가 여행 중에 배운 것들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면 너와 다른 비슷한 고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면  의미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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