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과 현실의 괴리감
느껴본 사람만이 알 것 같은데 그 유대인 밀집지역에 사는 유대인들이 얼마나 외부인을 기피하는지 직접 경험해보고 깨달았다. 예전에 상상했을 때에는 어느 정도 대화를 하고 멋진 일이 일어날 거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직접 경험해보고 나니 역시나 내 상상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가 기다리고 있었다.
숙소에서 출발하여 전철을 타고 브루클린의 유대인 밀집지역 지하철역에 내리니 영화 같은 광경이 펼쳐졌다. 누가 봐도 유대인으로 알아볼 수 있게 전통복장을 한 유대인들이 걸어 다녔고 뭔가 뉴욕이라 하기 힘들만한 광경이었다. 밝은 햇살 속에서 유대인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어딘가 분주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들 속에 동양인은 나밖에 없었는데 처음에 눈길을 살짝 주더니 이내 조금의 관심도 주지 않았다. 나는 한동안 조금 들뜬 마음으로 길을 걸어가면서 유대인에게 말을 걸 타이밍을 재고 있었다.
첫 번째로 길가에 서 있는 한 아이에게 말을 걸었는데 단순히 인사 및 영어를 할 줄 아냐는 물음에 아이는 놀라서 집으로 들어가 버렸는데 이때 힘이 좀 빠지고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들었던 생각이 외부인이랑 어떤 대화도 하지 말라고 교육 받은건 아닌지 의심도 되었다.
두 번째로 어떤 중년 남성에게 말을 걸었는데 그 사람은 내가 모르는 언어로 어떤 말을 한 뒤에 영어로 자기 할 일이 있다며 제 갈길을 갔다. 그래도 무시하지는 않은 게 다행이었다고 스스로 위안 삼으며 더 시도해보기로 한다.
세 번째로 어떤 유모차를 끌고 있는 부인에게 내가 유대 회당 위치를 물어봤는데 다행히 대답은 해주었으나 좀 차갑고 조금은 귀찮아하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로는 말 걸기가 힘들었다. 그냥 시작부터 소통 거부의 뉘앙스를 적극적으로 내비치니 내가 뭘 원하는지 말할 기회조차 오지 않았다. 동네길을 약 세 시간 가까이 돌아다니면서 말을 걸만한 인상을 가진 사람과 타이밍을 찾았는데 그러한 타이밍은 오지 않았다. 아, 어두워질 때쯤에 어떤 한 유대인 중년 남성이 내쪽으로 걸어와 그 타이밍을 찾았다 생각했는데 나와 눈이 마주치고 내가 있는 도보 건너편으로 가버렸다. 날이 어두워지고 길에 우둑하니 서 있으니 좀 이상한 사람으로 봤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이제와서 해본다.
모든 문이 막혔다고 생각했고 내가 뭘 더 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집집마다 문을 두드릴 생각을 해봤는데 그건 정말 엄두가 안 났다. 문전박대당하는 내 모습이 너무도 뻔하게 그려졌다. 그렇게 고민끝에 결국 차가 끊기기 전에 집에 돌아와야했다.
하지만 그날 한 가지 희망이 보였다면 내가 미국에 오기 전에 어떤 유대인 커뮤니티에서 알게 된 유대인에게 낮에 메신저로 혹시 이 지역에 알고 있는 유대인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생각보다 열심히 내가 구체적으로 무얼 하고 싶은지 물어봐 주었고 본인 주변에 아는 사람이 있는지 물어봐준다고 하였다. 그때 내 발길을 돌렸던 게 그것 때문에 안심이 됐던 탓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이렇게 돌아가지만 다른 방식으로라도 남은 기간 동안 시도해 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