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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재영 Nov 27. 2021

유대인 대학교에서 죽치고 앉아있기

예시바 대학교

이 여행을 하기 전에 주변인들에게 피치 못하게 여행 사실을 알려야 하는 상황에서 난 한 달 살기를 하러 간다고 얘기를 한다. 왠진 모르겠지만 내 특이한 목적을 얘기하면 여러 질문들을 받아야 하고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커지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뉴욕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미션과 여행 두 마리 토끼를 잡아보려 한다.


유대인 학생들이 다닌다는 유명한 대학교에 찾아가 보았다. 모든 학생들이 키파(유대인들이 머리에 쓰는 작은 모자)를 쓰고 다닌다. 그런데 캠퍼스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럼에도 간혹 캠퍼스를 지나가는 학생들이 있었다. 기숙사에 사는 모양인데 어딘가 바쁘게 가는 사람한테 말 거는 걸 정말 못하겠다. 일단 나는 타인에게 민폐 끼치는 것 같은 상황에서 느끼는 감정을 감당하지 못하는 듯하고 철판 까는 것을 하지 못한다. 이것은 간절함의 부족인가 바뀌지 않는 나의 천성인가.


나중에 겨우 용기를 내어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어 보이는 어떤 학생에게 도서관에 혹시 외부인이 잠깐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첫 시도는 쉽게). 알고 보니 유대인 공휴일이었고 도서관 또한 닫혀 있었으며 열어도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는 답변을 받았다. 내가 도서관에 가려고 했던 이유는 다큐멘터리에서 본 장면 때문이었다. 많은 유대인 학생들이 둘씩 짝지어서 토론하며 떠드는 모습, 그 모습을 직접 보고 싶었고 무엇보다도 가정교육을 배울 수 있는 인맥이 형성될 가능성 때문이었다. 그 학생은 다음 주말 이후부터 다시 도서관이 연다고 하였고 내가 헛걸음을 할 수도 있으니 오기 전에 외부인 출입이 가능한지 확인해보고 오라고 친절한 조언을 해주었다. 난 연락을 미리 하고 올 생각이 없었으니 그 이유는 숙소랑 그리 멀지 않은 곳이라 여행하러 나오는 김에 들러도 되기 때문에.


캠퍼스의 한쪽 건물 사진이다. 텅 비어 있는 학교지만 아주 가끔 학생들이 보이긴 하였다.

다음 주말이 지나고 다시 학교를 찾았다. 역시나 외부인은 도서관 출입이 되지 않았고 캠퍼스에서는 결과적으로 아무에게도 말을 걸 수가 없었다. 캠퍼스 근처 벤치에 앉아서 한 시간 가까이 기다렸는데 생각보다 말을 걸 타이밍이라던가 말을 걸만한 상황이 안 따라주었고 나조차도 적극적인 모습이 아니었다. 여기에 올 때 하고자 했던 건 유대인의 교육을 배우는 것뿐만 아니라 여행도 하러 온 것인데 그래서인지 유대인과 대화하기 위해 기다리는 시간이 낭비처럼 느껴졌다. 회의감이 들었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캠퍼스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까지 느껴졌다. 오늘은 못 만나겠구나 계속 흘러가는 시간이 아까우니 여긴 다음에 오고 여행을 먼저 하자! 어차피 이 대학교는 내 숙소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으니 여행하면서 언제든 올 수 있다. 그래 다음에 또 오면 기회가 있을 거야.


그 이후로는 며칠간 이 대학교로는 돌아오지 않았다. 유대인을 찾아다니는 시간은 조금씩 줄어들고 여행을 하는데 더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여행을 하는 동안은 적어도 시간이 낭비된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하지만 여행은 플랜비였지 주목적이 아니었다. 그러나 나는 시간이 낭비되지 않는 기분을 느끼기 위해 여행하는 시간에 더 투자하는 걸 택했다. 그렇게 유대인 교육은 뒷전이 되어버렸다. 물론 여행하면서 얻는 것도 많다.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언제가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먼길을 왔으면 여행도 충분히 하고 가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여행으로 비중이 많이 쏠렸고 며칠 몇 날이 흘렀다. 하지만 여행을 하면서 마음 한 구석엔 찜찜함이 남아 있었던 것 같다. 난 그저 미션을 수행하는 것에 절박하지 않았던 것일까.


외국인 친구를 만난 식당에서 먹은 음식. 워낙 유명한 곳이라 자리가 없어 우연히 합석하게 되었다.


꼭 여행 명소에 찾아가지 않더라도 우리나라에서 유행 중인 한 달 살기 하듯이 뉴욕의 한량처럼 길거리를 돌아다니며 먹고 싶은 것도 먹고 사람 사는 것도 보며 생각 정리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가끔은 바에 가서 마셔본 적 없는 칵테일이나 양주를 주문해 마시기도 하였고 길거리 음식점에서 사 먹기도 하였으며 유명 레스토랑에서 우연히 혼자 여행 중인 외국인 친구를 만나 같이 돌아다니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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