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나고그 탐방 그리고 약속
오늘도 여느 날과 다름없이 맨해튼을 향해 집을 나선다. 나의 숙소는 뉴저지에 있었으나 주(state)가 다른 것 치고는 다리 하나만 건너면 뉴욕 맨해튼이었다.
숙소는 맨해튼이 아니라 1인실임에도 불구하고 저렴하였고 주택지였으며 경찰들이 수시로 단속을 다녀 안전하다고 하였다.
날씨는 화창했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적당한 온도였다.
며칠 만에 유대인 대학교에 다시 찾아갔다. 이번에는 반드시 의미 있는 성과를 내고 말겠다는 생각으로. 이번에 찾은 유대인 대학교는 캠퍼스 느낌이 날 정도로 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여태 껏 나를 호기심으로 쳐다본 유대인은 없었다 적어도 내가 느끼기에. 그러나 오늘은 어떤 유대인 랍비처럼 수염을 기른 사람이 나를 유심히 쳐다보면서 지나갔다. 아무리 주변을 눈 씻고 찾아봐도 주변에 동양인은 나밖에 없었고 내가 올 때마다 찾을 수 없었다. 그런 상황이면 유일한 동양인을 좀 쳐다 볼만도 했는데 이상하게도 이 분이 처음이었고 그 이후에도 없었다.
그럼에도 나는 말을 걸 타이밍을 놓쳤고 난 그 기회를 잡지 못해 기분이 다운되어 있었다. 그러나 다시 마음을 다잡고 내 쪽으로 걸어오는 어떤 학생에게 말을 걸었다. 일단 첫마디는 자연스럽게 또 도서관 얘기로 시작했다. 이 도서관에 외부인이 출입 가능하냐고 물었고 내가 들어가려는 이유까지 설명했다.
내가 들어가려는 이유는 예전 한국 다큐멘터리에서 여기 학생 두 명이서 도서관에 앉아 시끄럽게 떠들면서 공부하는 영상을 보고 난 뒤 직접 방문하여 한번 보고 싶다는 이유를 얘기했다. 그 얘기를 들은 학생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았다. 자신도 예전에 어떤 다큐멘터리에서 한국 학생들을 봤었다고 그리고 그 장소라면 도서관이 아니라 그 옆 건물에 있다고 설명해주었다.
나는 더 나아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을 얘기했다. 정통 유대인의 가정교육을 배우고 싶다고. 유대인 마을 쪽으로 가도 쉽지 않았다고 조금은 하소연하듯이 얘기했다. 그러더니 'Synagogue'(유대 회당)를 찾아가 보라고 권유해주었다. "맨해튼에는 여러 'Synagogue'가 있어 거기에 찾아가서 한번 알아봐!" 그 조언을 듣고 나는 더 얘기를 하고 싶었으나 그 친구가 수업이 있는 관계로 연락처만 받고 헤어지게 되었다. 그 친구가 마지막에 했던 말이 기억에 남는다.
“그런데 너 리포터야?”.
내가 관심 있는 분야만 취재하는 리포터라면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글을 쓰는 사람과 읽는 사람들이 만나는 플랫폼이 따로 있다면 굳이 기자로 취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여하튼 유대인 마을과 대학교밖에 선택지가 없었던 나는 새로운 길을 얻은 셈이었다. 나는 곧장 그 친구가 말해준 유대 회당을 찾아다녔다. 정말 단순히 구글맵에 그대로 친다음에 여러 유대 회당이 검색되었는데 가장 가까운 곳부터 차례대로 방문하였다.
첫 번째로 찾은 유대 회당은 문이 굳게 닫혀 있었고 벨을 눌러도 아무 대답이 없었다.
두 번째로 찾은 유대 회당은 구글맵에서 말한 것과 달리 그 위치에 그냥 아파트밖에 없었으며 아무런 푯말도 찾을 수 없었다.
세 번째로 찾은 유대 회당은 입구 주변에 서성이는 나를 발견한 한 중동계 쪽으로 보이는 아저씨가 조금은 경계를 하는 것처럼 느껴졌고 어떤 일로 왔는지 물어보았다. 나는 유대 회당의 랍비를 인터뷰하고 싶다고 자연스럽게 대답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사전에 약속 없이는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이다.
네 번째 유대 회당, 도착했을 즈음에 어떤 여성분이 유대 회당 입구에서 나오는 걸 보고 대뜸 가서 외부인이 들어갈 수 있는지 물어보았다. 그분은 친절하게 입구에서 벨을 누르고 안쪽에서 열어주면 시무실로 곧 장 가서 용무를 말하면 된다고 하였다.
회당 안에는 한 흑인 여성분이 앉아계셨다. 나는 여기 유대 회당의 랍비와 인터뷰를 하고 싶다고 말했고 그분은 쿨하게 전화를 한 통 걸어 대화를 좀 나누시더니 시간 약속을 잡아주셨다.
“여기 한 청년이 당신을 인터뷰하고 싶어 해요. 한국에서 왔다네요”
나는 며칠 후로 약속을 잡았고 그 약속시간에 다시 왔을 땐 누구도 만나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