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리뷰 에세이-영화<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백만 달러 버는 법> 중
아들은 재산을 물려받고, 딸은 암을 물려받지.”
– 영화 <할머니가 돌아가시기 전에 백만 달러 버는 법> 중에서 (1)
태국 영화 속 대사였지만, 그 말이 꼭 우리 집 얘기 같아서 훅하고 내 맘에 들어왔다.
대장암 말기 엄마는 유일한 재산인 집을 둘째 아들에게 넘기고
생의 마지막을 딸의 집에서 지내게 된다.
엄마는 딸의 냉장고 속 오래된 음식을 치우며 말한다.
'나처럼 오래된 음식은 먹지 마라'
그 말에 딸이 말한다.
“아들은 재산을 물려받고, 딸은 암을 물려받지.”
그 말투엔 다정함도, 원망도, 체념도 다 섞여 있었다. 하지만 원망보다 체념과 다정함에 더 가까운 말투다.
이 말에 나의 어릴적 모습이 떠올랐다.
어릴 적 엄마는 항상 남동생, 하나 뿐인 아들뿐이었다.
청소, 빨래, 설거지등 집안 살림을 돕는 건 항상 딸인 언니와 나였는데 말이다.
언니들은 큰소리 없이 늘 ‘딸’로 살았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사춘기가 들어서면서부터 서러움과 원망을 쏟아냈다.
나는 요즘 엄마를 자주 떠올린다.
다리가 자주 붓고 어지럼증으로 세상이 하얗게 핑 돌고
6개월마다 여성 병원 정기검진을 다니면서
“엄마도 이랬었지” 하고 중얼거리게 된다.
신기하게도, 닮고 싶지 않았던 엄마의 체질과 기질을
조용히, 정확하게 닮아간다.
피부 속에서, 장기 속에서, 감정 속에서.
엄마가 내게 준 건, 재산도, 집도 아니고
이런 몸, 이런 마음, 그리고 이런 가족 구조였다.
나는 문득, 엄마의 마음이 궁금해진다.
정말로 아들이 더 좋아서였을까.
아니면, 그저 그렇게 살아온 방식이었을까.
아들을 챙기고, 딸에게는 의지하는 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라고 배워왔던 걸까.
그 시절 엄마들에게 ‘딸’은 곧 ‘손’이었다.
남편의 손이 아니면, 딸의 손.
살림도, 간병도, 정서적 지지도
딸의 몫이 되는 건 이상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나도 어릴 적부터
엄마의 그늘이 되어 살았다.
눈에 잘 띄지 않고
늘 곁에 있지만, 이름 불리지는 않는 역할.
이제는 원망보단 그냥 궁금하다.
엄마는 외롭지 않았을까.
자신이 받은 대로 또 자식에게 반복하는 그 마음은
어떤 감정일까.
누군가에게 기대는 동시에, 누군가를 먼저 챙겨야 했던 엄마들의 그 복잡한 마음 말이다.
어쩌면 엄마도, 그 위의 엄마에게
‘병’과 ‘삶의 방식’을 물려받았을지도 모른다.
누구를 탓할 수도, 누구를 미워할 수도 없는 유산.
가끔 상상해 본다.
내게 딸이 있다면, 나는 뭘 물려줄까.
병이든, 체질이든, 감정이든
내가 받은 것보다 더 나은 것을 주고 싶다.
몸이 아니라, 마음을 건강하게
조건 없는 사랑으로 기억되는 엄마이고 싶다.
그리고 무엇보다
딸에게 말해주고 싶다.
“넌 누구보다 귀한 존재야.
아들이 아니더라도, 잘 나지 않아도, 넌 이미 충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