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 리뷰 에세이 영화 <라이프 리스트>중에서
“사실이란 게 있고, 진실이란 게 있어. 둘 다 수용할 필요가 있어."
나는 늘 '사실'에 집착하며 살아왔다.
사람이 나에게 어떤 말을 했는지, 어떻게 행동했는지, 그게 내 마음에 어떤 상처를 줬는지.
기록하듯 기억하고, 마음 어딘가에 도표처럼 정리했다.
그 사람의 말과 행동이 내 마음을 얼마나 다치게 했는지,
그건 의심할 여지없는 '사실'이니까.
그걸 증명할 수 있으면, 나는 옳고 상대는 나쁜 사람이 되는 줄 알았다.
정의는 항상 내 편이라고 믿었다.
얼마 전 한 영화를 봤다.
여주인공 알렉스는 어릴 적 부모님이 이혼을 한 후 아빠 새무얼이 집을 떠났다.
그 이후 두 사람의 사이는 서먹했고,
알렉스는 늘 아빠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꼈다.
그러던 중 엄마의 유언으로, 어쩔 수 없이 아빠와 화해의 자리를 갖는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충격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
지금까지 아빠라고 믿었던 사람은,
생물학적으로는 자신의 친아빠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친아빠 조니를 만나게 되면서,
더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된다.
어느 날, 어린 알렉스를 멀리서 바라보던 조니는
도로가에서 차 소리에 반갑게 뛰어나오는 딸을
아빠 새뮤얼이 품에 안고 빙빙 돌려주는 모습을 본다.
“그런 적은 없었던 것 같은데요. 새뮤얼이 저와 할 법한 행동이 아니에요.”
알렉스가 말하자 조니는 조용히 이렇게 말한다.
“사실이란 게 있고, 진실이란 게 있어. 둘 다 수용할 필요가 있어.”
그 말이 마음에 박혔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진실은 그렇다.
샘은 생물학적 아빠가 아니었다.
그건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샘이 알렉스를 사랑했는지는 또 다른 문제였다.
그가 아빠로서 최선을 다했고,
소리치고 화냈지만 결국 그 아이를 지키고 있었던 건
부정할 수 없는 진실이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종종
사실만으로 사람을 재단한다.
그 사람이 내게 해준 말,
하지 않은 말,
서운하게 했던 행동들.
그걸 하나하나 모아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를 기준으로 그 사람을 판단한다.
그런데 혹시, 그 모든 오해와 상처 너머
진실은 또 다른 얼굴로 존재했던 건 아닐까?
어릴 때 나는 늘 외로웠다.
엄마는 늘 바빴고,
아빠는 무뚝뚝했다.
나는 그저 착한 아이처럼 보이고 싶어서
아픈 것도 말하지 않고,
힘든 것도 꾹 참고,
혼자 해결하려 했다.
그런 나를 보면서 아빠는 이렇게 말했다.
“넌 왜 말을 안 하냐?”
그 말이 서운했다.
도와달란 말도 안 했는데, 왜 화를 내지?
왜 내 마음을 몰라주지?
그런데 지금 돌아보면,
그 말이 그의 방식의 걱정이었는지도 모른다.
내가 너무 애쓰는 게 마음에 걸렸을지도.
도와주고 싶은데, 표현이 서툴렀을지도.
사실만 보면, 아빠는 나를 외롭게 했고
말 한마디 따뜻하게 해 준 적 없었다.
하지만 진실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늘 나를 걱정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조금 알 것도 같다.
사실은 기록처럼 남지만
진실은 마음속에 남는다.
기억은 자주 왜곡되고,
감정은 흐릿해지지만
어딘가에 분명히 남아 있는 그 따뜻한 순간들.
우리가 그토록 원망했던 누군가도,
사실과는 다른 진실을 품고 있었을지 모른다.
이제 나는 다시 조금씩 배워가려 한다.
상대가 보여준 사실만으로는
그 사람을 다 알 수 없다는 것.
진실은 늘
좀 더 오래 바라봐야 보이고,
좀 더 천천히 들여다봐야
마음에 닿는다는 것.
그래서 나도 오늘,
조용히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본다.
“사실이란 게 있고, 진실이란 게 있어. 둘 다 수용할 필요가 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