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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방인 임프제 Mar 25. 2024

보통 날 ~오늘과 같은 색의 내일~

하나도 특별하지 않은 평범한 매일에 대한 환상

우리의 모든 보통 날은 한번도
특별하지 않았던 적이 없어서



보통날(Ordinary Day)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이 단어가 가진 온도와 소리가 너무 좋아서 작가명으로 정할까도 생각했었고 만질 수 있다면 만져보고 온도를 느껴보고도 싶다고 생각했다. 무작정 이런 제목을 가진 노래라면 꼭 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무작정 Spotify에 검색을 하다가 인생곡도 몇 곡 건졌고… 나는 어린 시절부터 보통의 사람이 되고 싶었다. 욕심부리지 않고 남들 다 하는 만큼만 그 정도만 훌륭한 사람이고 싶었다.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꿈을 크게 가지는 것보다 겸손해 보였고 실현 가능성도 있어 보였다. ”짱구는 못 말려 “ 만화에 나오는 짱구네 가족처럼, 지극히 서민적인 그런 가족이면 될 것 같았다. 평범하다는 건 조금만 노력하면 누구나 쉽게 다다를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보통
알랭 드 보통 말고 그냥 보통
한자로 쓰면 普通 (넓을 보, 통할 통)으로, 굳이 해석하자면 널리 통하는 일반적인 것들.
세상에서 흔히 볼 수 있어 특별하지 아니하고 평범한 것. 또는 뛰어나지도 열등하지도 아니한 중간 정도.



보통이란 말을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 건 여전히 보통날에 다다르지 못해 우울하던 어느 날 오후였다. 여느 날처럼 내 마음속 불안의 원인을 찾고 있었다. 평범하게 사는 게 이렇게나 어려울 일이던가…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아무나가 된다는 게 나는 왜 이렇게 어려울까? 생각에 생각을 더해나갔다. 보통, 보통이라는 말 자체가 평균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얘기고, 그 평균이란 우리 모두가 다른 와중에 서로를 더하고 나눠서 구하는 건데… 서로 다른 우리가 모두 다 똑같기를 바라는 것도 아니면서 내가 딱 그 중간이길 바라는 건 얼마나 어려운 일이며 또 도둑놈 심보인가? 쉽게 말하면 나 포함 친구가 3명 있는데 내가 평균이고 싶으면 우리 셋다 언제나 형편이 똑같거나(절대 불가능하다) 나보다 나은 놈 나보다 모자란 놈 이렇게 한 명씩 이길 바란다는 게, 보통이고 싶다는 말이다. 말해놓고 보니까 보통 사람이 된다는 게 얼마나 도둑놈 심보인지 알겠다.



잠깐 “짱구는 못 말려”만화 얘기로 돌아가면, 만화의 초기버전의 에피소드는 지극히 서민적인 가족으로 짱구네 가족을 그려냈다. 하지만 일본의 버블 경제 이후, 대부분의 사람들의 형편이 어려워졌고, 캐릭터 설정 상 여전히 대기업 상사맨인 아버지와 가정주부 엄마, 도쿄는 아니지만 주차장과 마당이 딸린 단독주택의 집은 중산층 이상의 가정의 이야기로 그려졌다. 짱구네 가족은 “보통”의 범주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더 이상 평균치의 보통 가족은 아닐 수도 있겠다. 보통이 어려운 이유는 여기에 있다. 쉴 새 없이 너울거리며 바뀌는 중간점, 내가 중간보다는 위에 있는 것 같다가도 한순간에 모자라다고 생각이 들면 넘실대는 중간점 그 밑으로 가라앉아버린다.



보통은 이 사실을 잘 알지 못한다. 보통이 된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지 못한다. 나도 보통 사람들과 마찬가지였다. 전 직장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정말 힘들었을 때가 있었다. 일 자체가 힘든 거라면 더 노력하며 참고 견디겠지만, 무엇보다 나 자신에 대한 의구심이 들어 밑도 끝도 없이 가라앉기 시작했던 때가 있다. 그리고 그때 간절히 바랬다. 그냥 딱 중간만 했으면 좋겠다고…  뒤처지지 말고 중간만 했으면 좋겠다. 내가 만든 평범한 보통의 회사원은 그런 거였다. 딱 중간은 하는 사람. 그런데 딱 중간만 하는 게 제일 어려웠다… 그러다 중간도 못 갈지도 모른다는 불안이 밀려들었을 때 내 세계는 무너져버렸다. 그때 망가진 나의 하루는 고통스러웠다. 그냥 보통날 아무렇지 않은 평범한 하루가 왔으면 좋겠다. 그때 무작정 보통날(Ordinary Day)이라는 단어를 검색했고 그렇게 만난 일본 가수 “Tacica”의 “Ordinary Day”라는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묵묵히 견뎠다.



그저 가슴 깊은 곳에 숨어 살면서
타오르는 불꽃
이 맞바람에 맞서다 멈춰서도
우산 하나 없이 비에 젖어도
꺼지지 않는 불꽃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에게
그런 것이 있을까요?

여름에 겨울의 냄새를
떠올릴 수 없는 것처럼
분명 지금을 기억해내지 못할 거야
그저 밤의 천막에 무수한 별들이 매달려있다
그중의 몇이나 이름도 없이 사라졌을까요?

시간의 파도에 기억의 바다에 허우적거려도
반드시 웃을 수 있는 우리는
질려서 그만두는 일 따위 없어
왜냐하면 그저 보통날을 살아가는 것뿐

아침의 뉴스가 또
큰 두려움과 약간의 안도를
그중의 몇이 잊고 싶은 일, 잊고 싶지 않은 일
여름에 겨울의 냄새가 떠오르지 않을 때
반드시 지금을 떠올리는 거야


(Unsplash)


우연히 발견한 (자꾸 듣다 보니 약간 자살방지곡 같던) “Tacica”의 “Ordinary Day”를 무한재생하며 긴 터널을 걸어 나왔다. 맑은 날이 찾아왔다. 기분이 맑아서 그런지 햇살이 눈부셔서 힘겹다는 생각보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눈물이 났다. 그리고 문득 행복은 계속 여기에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그토록 바란 보통의 하루는 행운이 아닌 행복이라는 걸, 일상 속에 아무도 눈치 못 채게 살포시 스며든 행복이라는 걸… 보통의 날 속에 스며든 행복, 별다르지 않고 평범한 그 하루를 마무리하며 사랑하는 가족들을 생각하며 된장찌개의 감자를 써는 순간에도, 아이를 데리러 어린이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도, 좋은 거 보면 가족이 먼저 생각나는 그 마음속에도 행복은 항상 거기 있었다는 걸… 그래, 보통은 단 한 번도 보통이었던 적이 없어서 나는 보통을 갈망한다. 나의 보통날에는 행복이 숨어있어서, 보통을 원한다. 몰아치는 일상 속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보통의 날을 바란다. 우리가 결코 평범하지 않을 보통을 바라는 이유이다.



나의 평범한 보통날은… 아침에 눈 뜨면 3살 아들의 꼬수운 숨 냄새를 맡으며 눈 뜨는 아침… 매일 아침 커피를 내리며 아무 생각 없이 “무”로 존재할 수 있는 순간 그리고 그때 코로 스며드는 커피 향기…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순간… 내 생각이 담긴 글과 그림을 쓰면서 누군가에게 닿고 울리길 바라는 간절함… 어느새 시작된 매직아워, 해 질 녘 노을에 서둘러 어린이집까지 달려가는 종종걸음… 정성껏 차린 음식을 담아내기도 전에 배가 고파 한두 개씩 집어먹는 아이와 눈이 맞아 터져 나오는 웃음… 아무 이유 없이 사랑한다고 속삭여주며 그림책을 읽고 꿈나라로 보내주는 순간…


잠깐만… 언제나 평화롭기만 했던 건 아니야… 열성경련으로 눈이 돌아갔던 아들의 눈이 돌아오고 열이 내리자 입맛이 돌아오고 처음 뜬 밥 한 숟갈에 안도하던 순간… 지갑을 도둑맞고 비자도 없어져서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덕분에 가족과 함께 보낸 크리스마스 여행… 갑자기 남편 다리 골절에 갑자기 여행지에서 수술하게 된 시어머님에 시아버님까지 아프고 남편은 코로나까지 너무너무 힘들던 시기를 잘 견디고 원래의 일상대로 돌아와 소파에 앉아서 휴-하고 내쉰 날 숨…


(Unsplash)


그 모든 순간이 사실은 보통날이었다. 좋은 날 안 좋은 날 모두 나에게는 보통날이었다. 하루하루 오늘에 오늘을 더해, 오늘과 같은 색의 내일을 바라는 마음으로 살아낸 결국엔 특별했던 하루. 매일이 보통날이었다. 늘 하나도 특별하지 않고 지극히 평범한 매일에 대한 환상을 품고 있었지만 결국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한 내 모든 순간은 언제나 특별했다. 아팠던 기억도 힘들었던 기억도 특별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사실은 특별하지 않은 하루를 바란다고 되뇌면서도 매일 내가 특별하기를 바랐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특별하니까 잘 해내야 해. 특별한 나에게는 불행 같은 일은 일어나서는 안 되는 거야. 그렇게 회사에 다니는 동안에는 힘든 일 싫은 일은 그게 마치 삼킬 수도 삼키고 싶지도 않은 큰 알약이라도 되는 냥 내 경험의 일부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아무런 힘든 일도 일어나지 않길 바랐고 결국 내 인생은 정말 재미가 없어졌다. 보통날은 그 어떤 일이 일어나든 내 인생의 보통날이라고 받아들이는 그 순간부터 반짝거리기 시작한다.


보라색으로 물든 동경 하늘 속 반짝일 준비를 하는 스카이트리 (Unsplash)


아이 하원 시간은 언제나 매직아워를 지난다. 어둠이 찾아오며 만들어 내는 타들어가는 하늘에는 스카이트리가 반짝일 준비를 시작한다. 스카이트리는 특별한 날에는 콘셉트에 맞춰 그 색깔로 빛난다. 크리스마스에는 샴페인 병 모양을 따라 초록색에 거품이 올라간 듯한 하양, 산타클로스 같은 빨강에 하양. 밸런타인 데이나 화이트데이 특별한 날에는 특별한 일루미네이션으로 반짝인다. 그런데 사실 스카이 트리는 아무것도 아닌 날에 가장 아름답게 빛난다. 빨주노초파남보 한꺼번에 무지개 색으로 반짝일 때도 있고 순서대로 하나씩 시시각각 변하기도 한다. 스카이트리는 보통날에 가장 다채로운 색으로 가장 자기답게 빛난다. 오늘도 아이의 손을 잡고 집에 오는 길에 바라본 하늘과 오늘과 같은 색일 내일, 보통의 하루, 지금 난 행복하다. 그거면 됐다.


Ordinary day
정말 소중한 건
니가 있는 오늘과 같은 색의 내일
차고 넘치게 많은 건 아니야
얼마나 훌륭한지 알아?

질려서 그만두는 일은 없어
조금 더 평범한 날을 살아갈 뿐
평범한 오늘을 그저 살아갈 뿐

“Tacica”의 「Ordinary Day」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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