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속으로②] 천년의 노래, 오늘의 기억
그날 익산엔 비가 내렸다.
퍼레이드가 시작되자 하늘도 더 크게 울음을 터뜨린 듯했다.
무왕의 가마를 앞세운 행렬이 빗속을 천천히 가로지를 때,
언월도를 든 무사들이 흙물 튄 마당 위에서 묵묵히 무술 시범을 이어갔다.
익산 서동축제는 단지 한 도시의 문화 행사가 아니었다.
그 비 속의 풍경은, 1400년 전의 사랑 이야기를 오늘로 불러오는 의식 같았다.
“선화공주님은 남 몰래 서동을 사랑하여…”
백제의 청년 서동은 노래 한 줄로 신라의 공주를 흔들었고,
두 나라의 경계마저 넘어 사랑을 이뤘다.
마침내 그는 백제 제30대 왕이 되었고, 전설은 익산이라는 도시를 남겼다.
이날 축제에 참가한 시민들은 가벼운 우산을 들고 조용히 그 길을 걸었다.
아이의 손을 꼭 잡은 부모는 말했다.
“이게 우리 지역의 역사야.”
자부심이라는 건 거창한 선언이 아니라,
비 오는 날 그저 자리를 지키는 마음에서 시작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무왕 복장을 한 시민 몇 명이 웃으며 사진을 찍었고,
주변 상점은 많지 않았지만, 인근 카페 사장도 “매년 이 축제를 기다린다”며
자신의 고장을 향한 애정을 조심스럽게 털어놓았다.
이 도시는 오래된 이야기를 여전히 사랑하고 있다.
서동과 선화공주의 사랑이 시간이 아니라 ‘기억’으로 살아 있기 때문에,
익산은 여전히 사랑의 도시이자, 역사를 품은 왕국이다.
그 사랑이 꼭 전설 속에만 머무는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그런 기억이 있다. 아주 오래전, 대학생이던 시절의 일이다.
주짓수 체육관에서 만난 한 일본인 유학생이 있었다.
서로 언어는 서툴렀다. 그녀는 영어를 전혀 하지 못했고, 나는 일본어에 어두웠다.
하지만 그녀는 어설픈 한국어로 나에게 말을 걸었고,
가끔은 작은 메모지에 히라가나를 써서 건네주곤 했다.
그렇게 마음은, 단어보다 먼저 통했다.
그녀는 방학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갔고, 나는 아무 말도 없이 그 거리를 받아들였다.
얼마 후, 그녀가 보내온 사진 한 장.
기모노를 곱게 차려입은 채 성년의 날을 맞은 그녀의 모습이었다.
환한 표정 속엔 그 아이답던 수줍음이 여전했다.
나는 답장을 하지 않았다.
그건 나의 유약함이었고, 나의 서투름이었다.
그녀는 언젠가 내게 일본어를 가르쳐주겠다고 했지만,
나는 끝내 한 마디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다.
지금도 가끔 생각한다.
그녀는 잘 지내고 있을까.
그때의 미완성 문장들이, 그녀에게 상처로 남진 않았기를.
사랑은 시간을 건넌다.
도시는 기억으로 살아난다.
익산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증명하는 곳이었다.
그리고 비가 오는 날이면, 내 기억도 어김없이 그 시간을 걷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