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모성 연애의 허망함

차단된 메시지, 잠수이별의 상처

by 글곱


“이왕이면 세탁기를 바꾸시는 게 좋겠는데요.”


성훈의 목소리는 낮고 단단했다.

거뭇한 얼굴, 작은 체구지만 다부진 어깨.

에어컨과 세탁기, 가전을 고치고 다니는 그의 삶은 얼룩진 땀과 손톱 끝 검은 떼로 가득했다.


마흔둘이 되도록 연애 경험은 손에 꼽았다.

모솔이라 불릴 만큼 사랑에 서툴렀지만, 그래서 더 간절했다.


그러다 만난 사랑이 있었다. 바로 데이팅 앱을 통해서였다.

성훈보다 세 살 어렸고, 무기계약 공무직으로 일을 한다는 여자 민정.


성훈과 그녀의 대화는 늦은 밤이 지나도 계속 이어졌다.


"동네도 가깝고 인상도 너무 좋은데 다음 주 금요일 저녁 어때요?"

"저 금요일 5시에 끝나는데 더 빨리 봐도 되죠?"

"아 좋아요!"


첫 만남에서 그녀는 단정했고, 따뜻해 보였다.

커피 잔을 잡은 그녀의 손끝이 떨릴 때,

성훈은 그것마저 설렘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세상을 다 가진 듯했다.

퇴근 후 핸드폰을 열면 그녀의 메시지가 가득 품어 있었다.


“밥 먹었어요?”

사랑스러운 이모티콘의 남발과 평소 광고만 오던 카톡음이

신명 나게 울릴 때마다

하루의 피로가 녹아내렸다.


'누가 나한테 이렇게 적극적인 표현을 해준 사람이 있었을까?'

성훈의 영혼을 누군가 가득 채운 이런 포만감은 사실 처음이었다.


일이 너무 즐거웠다. 작업복에 밴 땀 냄새조차 희미해졌다.

서로의 목소리를 녹음해 보내며 잠들던 밤,

그에게 그런 사소함 조차 사랑이며 행복이었다


그는 처음으로 외롭지 않았다.

성훈은 믿었다.

이제야 겨우,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열렸다고.


그러나 사랑은 생각보다 쉽게 내 뜨거운 목을 타고

차디찬 발가락으로 흘러나갔다.


여느 때처럼 출근을 서둘렀다.

오른쪽 바지 주머니에 항상 있어야 할 열쇠가 없다.

민정의 집에 사무실 키를 흘린듯하다.

이른 아침에 들려 그녀의 집을 찾았을 때

평소 누르던 현관문 비번이 갑자기 바뀌어져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문 앞에는 쿠팡으로 배달된 빈 상자가 가득 쌓여 있었다.


성훈은 불길한 마음을 직감했다.

"띵동 띵동"

"누구세요??"

"나야 문 좀 열어줘"


"아침부터 웬일이야?"

"비번은 왜 바꿨어?"


허둥지둥 거리며 문을 뒤늦게 열어준 그녀는

불안한 시선과 행동을 보여주더니 안방문을 닫고 등을 꾹 눌러 앞을 막고 있었다.


그럴수록 성훈은 안방을 열고 싶었다.

방구석에 놓인 낯선 남자의 셔츠와 갈아 신은듯한 양말이 보였다.

스킨 냄새는 진했고, 침대 위엔 아직도 이 둘의 구릿한 온기와 침대 시트가 구겨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욕실에는 새로운 칫솔이 꽂혀 있었다.


처음엔 모두 착각이라 여겼다.


“오빠, 그건 그냥 친오빠 거야.”


민정은 애써 입꼬리를 올리며 먼저 이 상황을 차단하고 넘기고 싶었다.

하지만 직감으로 이미 알고 있었다.


며칠 뒤,

그녀 집에서

휴대폰 화면에 떠오른 메시지가 모든 걸 확신으로 채웠다.


“남자 친구 이번 일요일에 일하지? 그럼 그때처럼 일요일 갈게. 보고 싶다”


성훈과 함께 있는 공간에서 조차

그녀는 다른 남자와 대화를 이어가고 있었다.


성훈은 마치 쓰레기 더미 속에서 건져낸 날것의 고깃덩어리처럼,

민정에게 단지 욕구를 채우는 하나의 조각에 불과했다.


질리면 버려지는, 여러 어플 상대 중에 하나일 뿐.

차가운 침묵 속에서, 성훈은 침대에 몸을 웅크리고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왜 내가 사람을 쉽게 믿었을까?'

'너무 과하게 다가서고 잘해준다 했다 싶었다'


'나 역시 마음을 표현하고자 집에 가전제품도 들여놓고 에어컨 세탁기도 바꿔주고 직접 설치까지 해준

지난날이 떠올랐다'


숨이 막혀 등이 들썩거렸고,

뜨거운 눈물이 빰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가 간절히 원했던 건 사랑이었다.


하지만 그녀에게 사랑은 순간의 쾌락이었을 뿐이었다.

그녀와 함께 있던 낡고 허름한 아파트,

그곳은 서로 다른 욕구가 지나가는 교차로였다.

성훈은 영혼의 외로움을 달래고자 했고,

그녀는 육체의 갈증을 채우려 했다.


맞지 않는 톱니바퀴처럼 두 사람은 계속 어긋났다.


성훈은 밤마다 자신을 갉아먹었다.


'내가 부족해서일까?'

'내가 더 매력적이지 않아서일까?'


자책은 깊어졌고, 불면은 길어졌다.


퉁퉁 부운 눈은 얼마나 울었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며칠 밤을 뜬눈으로 보낸 끝에,

우울은 몸을 강하게 짓눌렀다.

그의 욕망은 단순한 육체적 갈망이 아니었다.

오랜 시간 외로움에 갇혀 있던 영혼의 목마름이었다.


대화하고, 추억을 만들고,

누군가와 삶을 나누고 싶었던 갈망.

그 단순하고 작은 바람이,

그녀의 욕망 앞에선 무참히 부서졌다.

사랑은 그에게 존재 자체였다.

그러나 그녀에게 사랑은 하나의 놀이,

욕망의 소모품일 뿐이었다.


어느 저녁,

성훈은 집으로 돌아와 핸드폰을 켰다.

그녀에게 보낸 메시지들이 ‘1’에 멈춰 있었다.

읽히지 않는 말풍선.

그 안엔 그의 온 마음이 담겨 있었지만,

그녀는 끝내 열어보지 않았다.

성훈은 화면을 바라보다가,

손에서 힘이 빠져 핸드폰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 작은 파열음이 방 안에 퍼졌다.


눈물조차 나오지 않았다.

암울과 혼돈, 괴로움의 틈에서

그는 비로소 자기 마음을 정면으로 들여다보았다.

외로움에 젖은 영혼은 사랑을 간절히 원했지만,

만난 것은 허망한 그림자였다.


그 순간 성훈은 깨달았다.

사랑은 누군가의 선택에 따라 버려지는 조건이 아니라고.

진짜 사랑은 민낯 그대로의 마음을 바라봐 줄 때

비로소 살아난다는 것을...


영혼이 파괴된 그의 가슴은 여전했지만,

그 허전함 속에서 작은 결심이 움트고 있었다.

더 이상 읽히지 않는 메시지에 매달리지 않겠다고.

언젠가 자신도,

있는 그대로의 마음을 이해해 줄 사람을 만나리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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