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방은 남서향 이랏다.

가난한 시대의 청산별곡(靑山別曲)

by 글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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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방은 남서향 이랏다."


'살어리 살어리랏다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멀위랑 다래랑 먹고 쳥산(靑山)애 살어리랏다.'

지루했던 국어시간에 그나마 달달 외웠던 청산별곡 첫 구절이 생각난다.


얼핏 보면 태연하게 자연과 함께하는 것 같지만

옛날을 그리워하고

아픔을 잊기 위해 다양한 것들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자신의 비탄을 위로해 주는 벗과

속세를 떠난 지식인의 염세적인 태도

현실에서 기적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지금 로또 1등 원하는 느낌일까?'


그것보단 삶의 고뇌와 비애

그리고 체념이 느껴진다.


'옛 기억이 떠오른다'


조그만한 방에 자취를 했다.


처음에는 좁디좁은 방에

이사 와서는 체념을 했다


'남쪽도 아니고 서쪽도 아닌 이곳!'


남향의 사치나 서쪽이 주는 햇살의 유한함

그것보다

내 방의 가장 큰 문제는 따로 있었다.


유일한 창밖 너머에서는 5미터 거리 남짓한

반대편 사람의 시선과 마주치거나

밤이 되면 코를 뚫고 들어오는 담배 냄새와

시끄러운 배달 오토바이 소리로부터 벗어나고 싶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그저 창문을 닫는 것이었다.

살아가는 집에 붙어있는 창문이지만

최애 음식을 보며 환하게 웃는 아이처럼

창문을 내 맘대로 크게 열어본 적이 없다.


주전자도 열 좀 식히라고

뚜껑에 구멍을 뚫어 놓는데..

창문하나 열지 못하는 내 삶이

정말 뭐 같다


주변 건물들에 둘러싸여

방에 들어서면 어둑하고 우울한 좁은 방이 더욱 갑갑했다.


그러다가

3~4시 즈음 집 보러 오는 손님처럼

햇살이 집안에 잠시 스며든다.


일찍 조퇴를 하고 쉬다가

그제야 깨달았다

"남서향이 맞긴 맞는구나!?"


유한한 시간이지만

도시 골목의 혼탁함을 이겨내고

창문을 조금씩 열어 햇살을 맞이해 보기로 했다.


향기롭지 않은 담배 냄새가 올라오더라도

남쪽의 따스한 온기가 아니더라도

하루를 마무리하는 서쪽의 일렁임이 없더라도


조금 남아있는 햇살의 부스러기로

소중한 화분도 자라고

덕분에 비타민 D도 합성하며

실내에 놓아둔 건조대 양말 한쪽도

바삭하게 말랐다.


다 가질 수 없는

남서향이라 칭하는 이 좁은 곳에서

청산별곡의 속세와 단절된 마음을 벗어나

봄이 다가 옮을 느꼈고

여름의 빗소리도 들었으며

가을의 선선한 바람과

겨울의 소복이 쌓인 눈도 바라봤다.


대충대충 살아가는

'인생이 어디 있으랴'만은

창문을 조금 열고 세상을 바라보니

생각보다 많은 것이 보였다.


그러다 보니 마인드도 달라졌다.

부족함을 채워내려고 그리 애쓰지 않고

주어진 시간과 현실을

그대로 마주해 보는 것도

썩 나쁘지는 않다고 긍정적으로 다독여 본다.


지금 칠흑같이 망망대해 속에서

나처럼 헤매고 있다면

생각을 바꿔보자.


지금 지내는 이곳이

5성급 스위트 호텔의 천만분의 1도 안되더라도

현실과 세속을 피하는 공간보다는

남서향의 햇살 부스러기로

쓸쓸하게 굽어가는 등이 아닌

곧곧히 세우는 가슴으로

인생 한번 '나르샤'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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