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낯의 용기로 우린 충분하다
별이 꽉찬 밤이 깊어서야 앞니 빠진 아이마냥 드문드문 불이 켜진 뿌연 형광등이
하나둘씩 꺼져갔다.
지지직 거리는 낡은 간판 위에 봄비가 흩뿌렸고,
쓰레기 더미가 희미하게 모이는 골목 모퉁이 끝에서 고양이 한 마리가 기척을 냈다.
계절이 바뀐 그날 모임은 특별한 맺음말도,
다시는 보자는 약속도 없었다.
누구도 먼저 결의를 다지지 않았고,
누구도 인생이 갑자기 바뀌었다고 쉽게 말하지 않았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이 자리가 자신들에게 어떤 의미였는지.
이별, 자격, 아픔, 빚, 실패, 외로움.
감추고 살던 고통스럽고 일그러진 얼굴들을
처음으로 꺼내 놓았던 곳.
그 무겁고 지저분한 것들을
홀가분하게 훌훌 털어내고
서로 외면하지 않고 함께 바라봐 준 순간.
그것만으로 가득채우고도 충분했다.
다시 돌아가게 될 세상은 여전히 기준을 내밀 것이다.
더 많이 가져라, 더 높이 올라가라,
조건을 갖추어야만 사랑받을 수 있다고 속삭일 것이다.
그러나 이제 그들은 안다.
민낯으로 존재해도 괜찮다는 것을.
그저 있는 그대로 숨 쉬고 버티는 것만으로
누군가의 곁에서 충분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 깨달음은 누구도 빼앗을 수 없는 자유로움이자 기쁨이었다.
비록 내일도 힘겹겠지만,
오늘 나눈 웃음과 눈빛은
그들을 오랫동안 지탱할 것이다.
사무실을 나온 골목길,
창밖 어둠 속에 불빛이 하나씩 꺼져 갔다.
그러나 각자의 마음 속 작은 불은
더 이상 쉽게 꺼지지 않을 듯했다.
민낯으로 존재한다는 것.
그것이 우리에게 남겨진 가장 확실한 희망이자,
삶을 살아갈 용기
그리고 가장 온전한 기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