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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명랑한김작가 Apr 29. 2022

퇴촌 책방

어느 길로 가야 하는지 가르쳐줄래?


사실, 
도수리만 사랑스러운 건 아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자리 중심으로 생각하기 마련이다 보니
내 얘기를 하고 있을 뿐이다.


아픈 사연들이 쌓이지 않는 한, 켜켜이 만들어지는 시간의 두께는 체형에 맞는 자리를 선사한다.

꼭 맞는 자리는 여행자의 발목을 잡고 세상의 중심은 여기라고 깃발을 꽂는다.

다음 여행지를 물색하는 이에게 여기가 적격이라고 무심한 척 강요하게도 된다.

정말 퇴촌은 그럴만한 이유가 충분하기는 하다.

30년 이상을 살아도 이주민이라고 불려진다는, 삼대는 살아야 원주민이라는 보수적인 토착민들의 마을이기도 하지만 아름답게 지켜낸 마을을 알아보고 슬며시 짐을 푼 여행객들은 콜라보를 제안한다.

타지에 사는 지인들에게 퇴촌 이야기를 들려주면 "거기는 예술가들만 사나 봐"한다.

나조차도 동네 이야기를 하다가 여기가 예술가가 되는 곳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거다.

어디서부터 이고 언제부터인지 모를 기류에 합류한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내면의 웅크리고 있는 예술가를 깨우게 하는 묘한 마력을 들이마시며 경화된 순수의 통로를 무장해제시킨다.

누구나, 그래 누구나다.

아무것도 아닌 것 같아서 보여 주지 못했던 서툰 표현들이 그만의 세계로 칭송받는 곳.

자신 없는 선, 무게 없는 색깔도 지금 당신의 마음인 거라고 말해 주게 되는 퇴촌이고 도수리이다.

함께를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각각의 세계를 함께 찾아보고 싶어졌다.


여기는 도수리 퇴촌 책방
치직지직...치치직...
이미 미래로 가서 시그널을 통해 여행하는 기분이다.


퇴촌에서는 나름 대중교통이 편리한, 웬만한 시내버스는 다 이 앞을 지나간다.

경기 광주 전철역을 가는 버스와 양재역을 비교적 짧은 시간에 갈 수 있는 광역버스도 있는 화려한 버스정류장이 책방 앞에 있다.

퇴촌 책방 앞 역이라고 정거장 이름을 바꾸면 어떨까 잠시 생각이 스쳤지만 오래 도수리를 지킬 자신이 없다는 무책임한 이주민의 특색을 드러내고 만다.


남종면에 사는 은주가 주워다 준 액자와 카페 문아지의 메뉴 보드였던 이젤, 

창작소 수강생의 학부모가 주신 교구 박스에 대학시절 잡지 이벤트 사은품으로 받은 미니북이 꽂혀 퇴촌 책방 간판이 되었다. 사뭇 딱딱해질 수도 있었던 분위기를 바꿔준 것은 정지리에서 수국 농장을 하는 윤희 씨가 생일선물로 수국을 대동시킨 일이다.

이날은 생일이기도 했지만 키키 안세정 작가가 진행하는 30일 글쓰기 4기가 오프라인으로 모인 날이기도 했다. 온라인에서 댓글 주고받으며 만나던 사람들이어서 어색할 수 있었지만 수국이 초대 손님을 환하게 맞이해 주니 분위기가 자연스러워졌다.

돌아갈 때 수국을 한두 개씩 안겨 줄 정도로 양이 많아서 인심도 후하게 쓸 수 있게 한 나의 윤희 덕분이었다.

책방인데 책 이야기는 없는 게 마땅치 않겠지만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건 분명했다.



책방은 업싸이클 작업으로 대부분 꾸며졌다. 

업싸이클 아트 에세이에 소개한 작품들이 모여있는 곳이기도 하다.

책이 많지 않다. 좋아하는 책만 구입하기 때문에 다분히 편협하고 개인적이다.

나를 닮은 장소, 또는 내 친구를 닮은 곳, 그래서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나를 좋아한다는 느낌이 든다.


퇴촌책방의 문은 자동문이다.

거의 닫혀 있지만 열릴만한 사람이 다가서면 자동으로 열린다.

사람들이 좋지만 사람들이 두렵고 혼자인 게 행복할 때가 더 많은 내가 왜 책방을 열었는지 이유는 분명하지 않다.

책을 좀 읽어 볼까 싶은 마음과 내가 좋아하는 것만 소개하면 되지 않을까 하고 쉽게 생각한 것도 있다.

혼자 읽기엔 너무 재밌는 책을 여러 사람에게 소개해주고 싶었지만 방법적인 면이 부족했던 것 같다.

취향대로 운영하다 보면 성향이 맞는 사람들만 모일 테니 더 즐겁지 않을까였지만, 시시때때로 흔들려서 중심이 무너지고는 한다. 

잘 모르겠다. 아직도...

다만 퇴촌책방이 있어서 감사하고 행복하다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것으로 좋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문을 열었던 터라 모임이 자유롭지 못했지만 소수의 만남은 더 알찼다.

이것 또한 취향저격!



어제는 우산리에 사시는 분이 주문하셨던 책 두 권을 찾으러 방문하셨는데
 말린 시래기와 돌미나리를 가지고 오셨다.
한살림 콩이 들어 있던 포장백에 가지런히도 담아 오신
돌미나리가 이쁘기도 하다.

방금 뜯어 오셨다는데 다듬을 게 하나도 없이 정성을 들인 흔적, 지구를 염려하시는 마음이 담긴 재활용 지퍼백은 반듯해서 고된 그녀의 일상을 엿보게 한다. 어쩌면 닮은 사람들만 퇴촌책방에 모이는지도 모르겠다.

말린 시래기가 먹고 싶다고 소문을 냈더니 동네 시래기가 다 모여들고 있다. 

문아지 할머니표 시래기꽃게탕을 끓여 먹어야겠다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워 본다. 

봄이어서 그런가 몇몇 분은 오가피 순, 옻나무 순, 참나물까지 따다 주셔서 다듬는 게 좀 힘들었지만 귀한 선물인지라 한번 먹을 분량씩 정리해서 넣어두었다. 이런 게 시골에 사는 맛이지.

퇴촌에는 원주민과 제각기 다른 도시에서 살던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고 있다.

겉은 화려하지 않지만 내용은 어른들의 홍대 클럽일 것 같은 다양성과 트렌디함을 겸비한 지역이다.

우산리 친구분과 로제떡볶기를 먹고 있는데 가방에서 주섬주섬 뭔가를 꺼내신다.

인생의 반을 보내신 보스턴에서 붙여 온 오래된 엽서였다. 맘에 드는 게 있으면 다 골라서 갖으라고 하신다.

오래된 엽서들이었다. 

답례로 외할머니 방을 정리하다가 얻은 오원짜리 우표가 붙은 오래된 우체국 엽서를 드렸다.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의 소중한 순간들이다. 


퇴촌여행중이다.

그리고 지금 여기는 퇴촌책방이다.

칙지지직...지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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