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우로 현재까지 13명의 사망자를 낸 오송 궁평 지하차도 소식에 안 그래도 축 처진 병실 분위기는 장마철 눅눅한 습기처럼 축축했다. 휴게실에 삼삼오오 모인 환자와 보호자들은 보도된 뉴스 말고도 지역에서 아름아름 입소문을 통해 알게 된 피해 소식을 공유하며 안타까워하고 있었다.
심란하다.
지난 토요일 밤 입원한 b는 오늘 오전 심전도, 피검사 결과를 보고 시술 여부를 알려주신다고 했는데 오후에 시술 시간이 잡혔다.
의사분께서는 상황에 따라 관상동맥 조영술을 할지 스텐트를 삽입할지 일단 혈관 안을 좀 봐야겠다고 하신다. 얼마 전까진 비교적 담담했는데 내 목덜미가 뻣뻣해지고 있었다.
환자복을 입고 수술실로 들어가는 가족의 모습을 문밖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심정은 경험해 보지 않은 사람이 아니면 아마 모를 거다.
불과 두 달 전 아빠를 들여보낼 때도 명치가 타들어 가는 것만 같았는데... b는 또 다른 느낌이다.
b가 들어가자마자 나도 모르게 굵은 눈물방울이 뚝뚝뚝 떨어진다. 최근 몇 달간 참 많이도 울고 많이도 웃는다. 날씨 따라가는 건지 물줄기가 마르지를 않는다.
수술실 앞에서 기도하며 마음이 격해져 펑펑 울고 있는데 기분상으론 10분도 안 지난 것 같은데 의사 선생님께서 나오신다. 뒤늦게 살짝 민망했다.
"7년 전 혈관 봤을 때보다 크게 나빠진 것도 없고 약물로만 치료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부정맥 증상이 좀 있어서 병원에서 심장 체크 좀 하다가 수요일쯤 퇴원해야겠어요. 내일 추가로 검사할 것도 있고.."
감사 인사를 전하며 90도로 인사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참 다행이란 생각과 함께 내가 이토록 b를 사랑했었나 되묻게 된 순간이었다.
지금 있는 다인실에서 다른 병실로 옮길까 하다가 오며 가며 가림막을 사이에 둔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도 나쁘지 않아 그대로 있기로 했다.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께 핸드폰을 가져오라고 똑같은 얘길 반복하시던 여든 살이 넘어 보이는 할아버지는 자식들이 보고 싶은 신가 보다.
"우리 딸한테 전화 좀 해봐. 나 집에 가야 해"
"집에 가긴 어디 가세요? 다 나으면 딸이 데리러 올 거예요"
"아녀. 나 지금 가야 해. 딸이 온다고 했어"
하시며 자꾸 링거를 뽑으시나 보다.
"에이고 못 살겠네. 딸 전화번호가 몇 번인데요?"
"응? 1번을 꾹 누르면 딸이 나와."
퇴근 시간이 지나 딸로 보이는 아주머니가 헐레벌떡 병실에 오셨다. 아버지 때문에 소란 피워서 죄송하다는 말과 함께 요구르트 두병을 주신다. 좀 전까지만 해도 꼭 어린아이처럼 떼를 쓰던 할아버지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딸에게 묻는다.
"나 언제 갈 수 있어?"
아마도 할아버지의 자녀분들은 공무원이신 것 같다. 수해 때문에 남동생은 비상사태이니 절대 남동생한테는 전화하지 말고 차라리 본인한테 하라고 하신다.
"아녀 아빠 나도 계속 당직이야. 비 때문에 지금 청주가 난리야. 난리, 며칠만 더 참고 있어. 알았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