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림막 하나가 경계가 되는 병원 다인실 풍경
수해 피해 실종자들이 이 병원으로 왔다.
브런치에 올린 b의 입원 소식을 보고 파랑 일기 오랜 친구들이 쾌유를 빌어줬다. 그분들의 고마운 마음 때문인지 b는 별다른 아픈 증세 없이 주사 맞고 곤이 자고 있다. 내일 검사 결과가 잘 나오면 좋을 텐데, 혹 시술이 필요하다 해도 의술이 좋으니까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중이다.
병실에서 하루 종일 있다 보니 생각할 시간이 많아진다. 최근 몇 달간 내가 겪은 일들을 돌이켜보며 나 스스로도 많이 성장한 것 같은 기분이 들어 대견해하고 있는 중이다.
인생의 선택의 기로에서 퇴사라는 중요한 결정도 해봤고, 퇴사 직후 아빠의 입원과 엄마의 여행, 그리고 연이은 b의 입원까지.... 그런데 정말 신기하게도 이 모든 과정을 겪으면서 힘이 들기보다는 현실을 받아들이고 순응하는 내 모습을 발견했다.
부정적으로 생각하다 보면 끝도 없이 불평불만으로 이어질 수도 있었겠지만 내게 일어난 일들을 차분하게 글로 옮겨 적다 보니 마음의 정리도 되고 예전과는 다른 나의 하루가 순간순간 감사하게 다가왔다.
글쓰기와 아침 명상, 기도의 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가림막 하나가 서로의 경계가 되는 병실의 다인실은 처음이라서 어젯밤은 잠을 잘 못 잤다.
b가 잠이 든 후 브런치에 글을 다 쓰고 이제 좀 막 자려는데 옆에 아저씨가 흐느껴 운다. 다른 이에게 들릴까 봐 울음을 참는 흐느낌이 너무나 처절해서 간호사를 불러줘야 할까 잠시 고민했지만 흐느낌의 소리는 육체의 고통보다는 마음이 더 아픈 것처럼 느껴져 그저 들리는 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다.
오늘 아침 일어나 괜찮으신가 살짝 티 안 나게 쳐다봤는데 보호자가 안 계신다. 하루 종일 주무시는 것 같다.
남의 처지를 통해 나의 현실에 대한 안도를 한다는 것 자체가 인간의 본성일까? 잠시 옆에 계신 아저씨께 왠지 모를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내 바로 옆 할아버지는 막내딸이 하룻밤 함께 잠을 자고 떠난 뒤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가 와 계신다. 똑같은 말을 묻고 또 물으신다. 내 옷에 핸드폰과 돈은 어디 갔느냐며 요양보호사 아주머니께 따져 묻고, 아줌마는 딸이 가져갔다는 말을 수 없이 반복한다. 결국에는 스피커폰으로 딸과 통화를 마치셨는데도 한 시간 뒤쯤인가 할아버지는 내 핸드폰이 어디 갔냐며 또 물으신다. 우리 부부는 할아버지의 떼쓰는 모습이 귀엽게 느껴져 웃고 말았다.
제일 창가 자리에 앉은 아저씨도 심근경색으로 오신 듯하다. 혈전이 폐 쪽으로 간 거 갔다는데 많이 힘들어하신다.
방송 밥을 먹고 살아온 지난 20년의 직업병이 병실에서도 나오니 참 기분이 묘하다. 무심코 지나치면 될 것을 청음이 발달한 내겐 작고 사소한 대화들이 스토리가 돼서 들린다.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소리로만 듣고도 그분의 상태와 상황을 어림짐작하는 나를 마주한다.
입이 심심해서 병원 1층 매점에 내려갔었다가 직감적으로 오송 궁평 지하차도 수해 피해자들이 이 병원으로 왔구나 하고 짐작을 했다. 거의 직감은 맞는 편이다.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울고 있는 사람들, 응급실 앞에서 절규하는 모녀, 여러 대의 응급차, 여기에 방송국 취재기자가 현장을 스케치한다. 분명 A 방송국 로고인데 청주 지국 기자는 보이지 않는다. 중앙에서 온 듯하다.
슬픔을 넘어 절망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마이크를 들이대는 기자들. 어쩌면 피해 당사자들에게는 너무나 잔인한 이 과정들을 얼마 전까지 내가 해왔다는 게 믿기질 않는다.
병실에 올라와 뉴스 검색을 했다. 이번 수해 피해로 10여 명의 사상자가 난 오송 궁평 지하차도 실종자들의 집결 병원이 공교롭게도 지금 b가 입원해 있는 이곳이다.
그들의 슬픔이 내게도 전해져 마음이 너무 아프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사고로 하늘나라로 간 고인들과 그들의 가족들에게 안타까운 위로의 마음을 전한다. 오늘 밤에는 꽤 오랜 시간 기도를 해야겠다.
여러 가지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
구멍이 뚫렸던 하늘은 다행히도 점차 개고 있고 있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맑은 하늘조차 원망스러울지 모르는 하루.
삼가 고인들의 슬픔을 함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