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없이 물끄러미 바라본 13층 아파트 창밖 너머의 풍경 가운데 난 파란 하늘을 보는 게 좋았다.
시시각각 변해가는 하늘의 색깔과 유유히 지나가는 구름의 모습, 어느 날은 하마처럼 풍성하게 불어 올란던 구름도 또 어느 날은 흔적도 없이 맑은 하늘빛으로 변한다.
그냥 멍하니 바라보며 아무것도 안 하던 그 시간들이 좋았다. 부모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그렇게 오랜 기간 입을 꽉 다물진 않았을 텐데.... 자식을 키워보니 그때 나의 엄마가 나의 아빠가 그리고 말 없는 누나 때문에 속이 상했을 동생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려온다.
내 말문이 트이게 된 장소는 엄마 손에 이끌려 간 충남 조치원의 한 기와가 있는 시골집이었다. 분홍색 바바리코트를 입고 있었고, 구름 한 점 없는 전형적인 가을 날씨 속 시골집 마당에는 주황색 감이 탐스럽게 달려있었다.
생전 처음 가보는 집에는 무서운 인상의 노모가 있었다.
"놀랬네. 많이 놀랬어. 심각하게 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나?"
엄만 울면서 그간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았고 난 그 집의 세간을 둘러보고 있었다.
그 노모는 날 방바닥에 눕혔고 내 손바닥을 날카로운 무언가로 베었다.
"아아아아아악~악!!!!" 왼 손과 오른손 차례로 생살이 베어졌다.
"악! 악!"
비명과 함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여긴 어디지? 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검지 손가락 아랫부분 손바닥을 1cm 정도 벤 곳에서 진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
손바닥을 칭칭 감았던 붕대 사이로 선명했던 피자국이 배어 나왔다. 아픔의 충격 때문인지 내가 입을 닫고 살았던 지난날의 기억들이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마취 없이 생살을 벤 것에 대한 지독한 아픔 때문인지,
아니면 그 노모 때문인지,
그도 아니면 고통스럽고 아팠던 혹독한 사춘기가 갑작스레 지나간 건지도 모른다.
아무튼 그날 이후에 난 처음으로 몇 달 만에 말을 했다. 꼭 필요한 말 외에는 하지 않았지만 학교에 갈 정도로 상태가 호전되어 2학년 때부턴 학교도 정상적으로 다니게 됐다.
어쩌면 날 이해해 주지 않는 세상과 단절된 나만의 세계 속에서 영영 나오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