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함묵증'을 겪고 난 뒤 모든 게 예전과 똑같을 순 없었다. 똑 부러지고 발랄하고 쾌활했던 내겐 그때 생겨버린 틈 사이를 비집고 '우울'이란 감정이 들어와 버렸고, 스마트한 여중생이라기보다는 뭔가 나사가 풀린 애 같았다. 예상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남들보다 더 많이 불안해하고 걱정이 많은 아이였다.
중2였던 그 시절 무용을 가르치던 나의 담임 선생님은 그런 나를 누구보다 이해해 주고 아낌없이 대해주었다. 천둥 번개가 내리치고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 날에는 무서워하는 날 직접 집까지 태워다 주시기도 했고, 나의 사소한 얘기까지도 많이 들어주셨다. 검은색 뿔테 안경을 쓰고 결혼할 나이가 한참 지났는데도 비혼으로 계셨던 단발머리의 K 선생님. 아마 그 선생님이 계시지 않았다면 학교 생활을 정상적으로 하지 못했을 것이다. 내 마음속에 있던 선생님 하면 떠오르는 괴물 같은 이미지를 어릴 적 보았던 ‘천사들의 합창’에 히메나 선생님 그쯤으로 중화시켜 준 고마우신 분이다.
기자가 된 이후 교육청을 꽤 오랜 시간 출입했다. 17년 넘게 기자 생활을 하면서 제일 난처할 때가 소위말해 조지는 기사를 써야 하는데 해당 부서 혹은 학교 관계자가 은사님이거나 출신학교일 때다. 분명 난 어디 소속 기자입니다만 밝히고 취재를 시작하는데 어떻게 알고 상대방은 00 학교 출신이죠? 누구 선생님 알죠?라고 되물으니 영 당황스러운 게 아니다.
그래서 기자들이 제일 꺼려하는 말 중 하나가 “저 기억나세요?”다.
이 질문을 받는 순간 머리를 최대한 굴려 기억을 떠올린다. 어디서 봤지? 느낌상 안 좋았던 취재인데, 모른다고 할까? 대충 얼버무릴까?
하지만 프로답게 당혹감은 뒤로 하고 본격 취재에 들어간다.
그날도 인터뷰이가 “A중학교 나왔죠?”라고 묻는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고 싶은 시간들인데 내가 지나온 시간들을 다른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다.
“K선생님 아시죠? 무용 과목 가르쳤던... 가끔 임기자 얘기했어요.”
“아... 네 잘 지내시죠? 저한테 각별히 잘해주셨던 고마운 분이에요.”
“지금 어디 계세요?”
“진작에 퇴직하셨죠. 아직 혼자 살고 계세요. 연락 한번 해 보세요. 제자가 기자 됐다고 좋아하셨어요.” 하며
인터뷰이는 내게 핸드폰 번호 하나를 건네주었다.
하얀 메모지에 적힌 핸드폰 번호를 보고 한참을 망설였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났다.
“엄마 그 K선생님 기억나? 우리 담임이었던...”
“그럼 기억나고 말고, 너한테 얼마나 잘해주셨는데. 그 선생님 없었으면 네 힘든 시기 못 버텼을지도 몰라. 연락 좀 꼭 드려봐. 아니 엄마랑 함께 만날래?”
스승의 날 즈음이 돼서 학교 현장에 스승의 날 관련 취재를 하러 갔다. 갑자기 K선생님이 또 떠올랐다.
‘꽃바구니라도 사서 찾아봬야 하는데..’ 착한 마음의 소리와 달리 또 다른 마음은 그냥 말없이 세상을 멍하니 바라만 봤던 ‘어두웠던 그 시절을 다시 소환하는 게 싫어’라고 말하고 있었다.
난 아직도 K선생님을 뵙지 못했다. 그 흔한 감사하다는 말씀도 드리지 못했다. 선생님의 눈을 마주한 순간 어두웠던 그 기억들이 스멀스멀 올라올 것만 같은 불길한 기분에 휩싸이면 어쩌지 하는 걱정 때문이었다.
마흔넷에 11살 13살 두 아이를 키우고 있는 엄마가 되면서 자주 하는 기도 중 하나다.
“하나님 우리 아이들은 사춘기 시절을 무난하게 지나가게 해 주세요. 그리고 세상의 수많은 벽을 만나도 그 벽을 두드려 헤치고 나갈 수 있는 용기를 주세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