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쯤 취재원으로부터 모 학교 교사가 학생을 임신시켜 학생이 돌연 자취를 감쳐버렸다는 제보를 들었다. 취재원의 정보가 워낙 구체적인 데다 학생이 자퇴를 한 시점과 그 교사의 갑작스러운 발령 등 수상한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 학교 학생들과 취재원에게 들은 정보를 바탕으로 사실 관계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총각 선생이던 C는 그야말로 쓰레기였다. 시골에서 자취를 하면서 여학생을 집으로 한 두 명씩 불러들였고, 그 교사는 학생들과 술을 마시며 부적절한 관계를 이어 나갔다. 확인된 피해 학생만 해도 꽤 여럿이었다.
워낙 민감한 내용이라 보도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을 했지만 C 같은 인간은 이 세상에서 격리시켜야 한다는 신념 아래 학교와 인물을 철저히 익명으로 하고 기사를 써내려 갔다. 피해자 엄마의 녹취록도 확보되었고, 피해 학생들의 인터뷰도 음성변조로 해서 나가기로 한 상태였다.
그런데 뉴스가 나가기 직전 취재에 응했던 피해자 엄마가 전화기에 대고 고함을 지른다.
“기사 나가는 거 아무리 생각해도 안 되겠어요. 익명으로 나간다 해도 우리 애랑 그 친구들은 알 거 아니에요. 그럼 우리 딸 두 번 죽이는 거예요.”
“어머니. 어머니 심정은 충분히 알겠어요. 하지만 취재 인터뷰에 분명히 응해 주셨고, 이미 편집까지 다 마친 상태고 방송 직전인걸요. 그건 좀 곤란할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야! 너 내 말 못 알아들어? 마음이 바뀌었다고!!! 죽을래? 만약에 이 기사가 방송에 나가면 너 죽이러 갈 거야. 그런 줄 알아.”
처음부터 취재에 응하지 않았으면 시작도 안 했을 거다. 기사에 사심이 들어가면 결코 안되지만 이 취재를 하면서 중학교 시절 그 몹쓸 수학 선생이 떠올랐다. 인터뷰를 딸 때도 인서트를 찍을 때도 심정적으로 괴롭고 힘든 과정이었지만 내가 꼭 해야 할 일이라고 여기고 꾸역꾸역 이어가고 있었는데....
이제 와서 갑자기 기사를 내보내지 말라니.....
그 피해 학생의 엄마는 나에게 한 전화를 우리 데스크에게도 사장에게도 걸었다. 결국 그날 그 기사는 방송에 나가지 못했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가장 힘든 부분 중에 하나는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들의 상황이, 그들의 고통이 일정 부분 취재기자에게도 고스란히 전이된다는 점이다. 한 사안에 대해 양쪽 이야기를 충분히 듣고 냉철함을 잃지 않고 사실관계를 가려내는 일이란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기자를 그만둔 지금은 내가 그동안 해온 일들을 돌이켜보며
“그래도 기자 하길 잘했다”라는 마음과
“진작에 때려치우지 그랬어. 참 잘한 선택이다” 이 둘의 마음이 공존한다.
세상에 수많은 이야기들을 세상 밖으로 끄집어내어 전해주고 싶었던 욕구는
어쩌면 중학교 시절 어둠의 터널에서 말 한마디 못 하고 움츠려만 있던
나 자신에 대한 반기일지 모른다.
입을 닫고 가만히 있기보다는 세상 속으로 나아가 부딪히고 표현하며 함께 살아가고 싶었기에
꽤 오랫동안 기자란 직업을 해왔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가끔은 아직도 내 진짜 속마음은 말보다는 글이 더 편하다. 발화가 된 말이 아닌 심연의 마음의 소리까지도 건져 올릴 수 있는 언어의 도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