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여행은 너희를 더욱 빛나게 해!

눈부시게 아름다운 냐짱

by 임가영


벌써 청주를 떠나온 지 나흘째 되는 밤이다. 여전히 냐짱의 낮과 밤은 눈부시게 아름답다. 매 순간 풍경이 주는 황홀감에 빠지고 아이들과 b의 노는 모습만 봐도 미소가 싹트는 하루하루였다.



늦은 밤 도착한 첫날은 여행의 피로로 이 도시를 느낄 겨를이 없었고, 이튿날 냐짱의 도시 투어는 낯선 곳에서 느끼는 설렘과 흥분을 가득 안겨주었다.



셋째 날은 바다가 보이는 탁 트인 풀장이 선사하는 빛나는 물결과 풍덩 꼬르르 잠수와 폼이 웃긴 개수영, 우리의 루피 공을 갖고 놀기에 에너지가 넘쳤다.



그리고 오늘 이제 제법 요령이 생겨 그랩을 타고 깜란 시내에 bbq 식당을 찾았다. 3일 내내 쌀국수와 포슬포슬한 볶음밥, 해산물 요리를 먹었던 b와 그의 미니미는 고기를 진심으로 원했다.


"고기! 고기! 질겅질겅 씹는 맛 나는 고기!"

Xoai bbq 레스토랑을 찾았는데 즉석에서 숯불로 구워 먹는 캠핑장 분위기가 물씬 났다.

노란 전구 장식에 이글이글 타는 소고기, 분위기와 냄새에 취해 식사를 즐기려던 찰나 우리 바로 앞에서 싸우는 소리가 들린다.

레스토랑 전체를 들썩이게 할 정도로 70 된 노파와 50대로 보이는 남자가 한국말로 거센 욕을 하며 싸운다.

"저런 어른이 되지는 말아야지. 한국 망신 다 시키네"

베트남 직원들 어쩔 줄을 몰라한다.
싸움의 원인은 50대 남자의 딸이 그네를 타고 있었는데 70대 할머니가 다짜고짜 내리라고 한 게 50대 남의 기분을 나쁘게 했단다. 처음엔 전라도 말씨의 50대 남이 기세를 잡고 있었으나 잠시 뒤 70대 할머니가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내가 여기서 죽고 말지. 이런 꼬락서니를 당한다"라며 울분을 토했다.

그 소리가 너무 커서 나까지 심장이 쿵쿵 뛰었고 아이들과 함께 온 다른 테이블은 아이들의 눈을 가리기도 했다.

밥이 코로 들어간 건지 입으로 들어간 건지 처음엔 정신을 도통 차릴 수가 없었다. 만약 싸움이 커지면 바로 옆에 있었던 우리 가족을 어찌할지 a, b, 플랜까지 짜놓을 정도였으니까.

다행히 오랜만에 제대로 된 숯불 육고기를 먹은 우리 가족은 뒤늦게 안정을 찾고 배부르게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냥 서로 사과하면 되지. 다른 나라까지 와서 뭐 하는 거람" 열한 살 딸보다 못한 어른들의 처신에 괜히 내가 부끄러워졌다.

그리고 오늘은 도통 사진을 잘 안 찍어주는 b가 어쩐 일로 바닷가 앞에서 가족사진을 꽤 여러 장 찍어줬다.

쨍한 햇살, 파란 하늘 반 파란 수영장 물 반이 주는 색감에 사진이 기가 막히게 잘 나왔는데
오늘 b가 핸드폰을 수영장에 빠뜨렸다.

그래서 그 유난히 잘 나온 예쁜 사진들은 우리 기억 속에만 있다.

딸과 함께 특별한 추억도 쌓았다. 일랑일랑 아로마를 골라 노근 노곤 한 마사지를 함께 받고
오랜 수영으로 지친 남자들을 숙소에 두고 밤바다를 거닐었다.

"지효야! 꼭 오늘 밤 기억해야 해. 엄마랑 단둘이 걸었던 냐짱 바다"
"엄마 근데 어쩌지? 내가 진짜 기억력이 최근 거는 사소한 거까지 죄다 기억하는데 옛날 건 자꾸 까먹어"

셋이 모두 잠든 밤 이렇게 글을 써놓는 건
나중에 내가 나이가 들어 할머니가 되고,
너희들이 스무 살쯤 됐을 때
까만 밤하늘 위에 환한 보름달과

철썩이는 파도 소리,
우리가 함께 버기를 타며 느꼈던

그 바람결을 기억하면 좋겠는 마음에서야.


벌써 여행의 반이 지났어.
남은 반이 기다려지면서도 너희들이 잠든 이 시간조차 아까워 잠 못 이루는 밤. 그런 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