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떠나는 비행기와 집으로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의 체감 온도가 이렇게 다를 줄이야. 까맣게 그을린 피부도 한몫했지만 하루종일 놀아도 피곤한 줄 몰랐던 휴양지가 주는 들뜸과 낭만이 사라졌기 때문일 게다.
공항에 도착해 비행기 문을 나오는 순간 마주한 청주의 여름 공기는 베트남과 확연히 달랐다.
화가 난 수증기를 잔뜩 머금은 찜통더위가 예고 없이 훅 들어온 느낌이랄까?
수화물을 찾고 있는데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디야? 공항 마중 나왔어"
"할아버지~~~!!!!" 아이들의 표정이 반짝거린다. 8일 만에 본 건데도 꼭 몇 년 만에 만난 이산가족처럼
정이 뚝뚝 넘친다. 차 안에서 창 밖을 바라보며 집으로 향한다. 분명 익숙한 도시 풍경인데 여행 후 바라본 그 모습은 전과 달리 새롭게만 보인다. 모든 건 마음먹기에 따라 다르다는 걸 새삼 다시 느낀다.
집 문을 열자 익숙한 음식 냄새가 난다. 엄마표 집 밥 냄새. 킁킁킁 코를 벌름거리며 두 팔로 엄마를 꼭 안았다. 일주일여 만인데 꼭 몇 년의 시간이 흘렀던 것처럼 그리움이 한순간에 몰려와 더 세게 엄마를 안는다.
집밥이 그리웠을 우리를 위해 엄마가 식탁에 한가득 음식을 차려놓으셨다.
아직 한 술을 뜨기 전부터 때깔 좋은 오이무침과 차돌박이 간장 조림, 부들부들한 고추장 양념 두부, 돼지고기가 잔뜩 들어간 김치찌개를 본 순간부터 침이 고인다. 꿀꺽 마른침을 한 번 넘기고
"잘 먹겠습니다." 우리 넷은 걸신들린 사람처럼 허겁지겁 엄마 집밥을 입속으로 밀어 넣고 있었다.
엄마표 김치찌개
언젠가 "난 엄마 반찬 중에 고추장 양념 두부랑 김치찌개가 최고야! 빨리 배워둬야 할 텐데"
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걸 엄마가 기억하고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모조리 해놓으셨다.
칼칼함이 진국인 김치찌개를 목으로 넘기며, 연하고 부드러운 매콤한 두부의 식감을 입 속에서 굴리며 엄마의 사랑을 온몸으로 느낀다.
여행 내내 고수가 잔뜩 들어간 쌀국수를 하루도 빼놓지 않고 먹었다. 고수가 먹고 싶어 일부러 집 근처 마라탕 집을 자주 찾곤 했는데 냐짱에는 고수 말고도 고수 계열의 쌉싸름한 화장품 맛 나는 신기한 풀들이 많아서 참 행복했었다. 면 종류도 널찍한 면인 pho부터 스파게티 라자냐를 넣은 거, 소면처럼 가는 면인 Bun 등등 각양각색의 쌀국수를 섭렵하며 "난 동남아 체질이야!!"를 외치며 현지 음식을 즐겨 먹었다.
그런데 제 아무리 맛깔난 베트남 음식이라 할지라도 엄마의 정성이 듬뿍 담긴 집밥을 이길 순 없었다.
내가 자라면서 늘 먹던 몸이 기억하는 맛, 입으로 들어가는 순간 뇌가 인지하는 맛, 그래서 몸이 편안해지는 엄마 집 밥.
나도 좀 요리를 잘해야 아이들에게 엄마 집밥을 뇌리에 심어줄 수 있을 텐데 고작 잘하는 거라곤 카레, 김치볶음밥, 스파게티 정도이니 더 분발해야겠다.
그래도 다행인 건 "엄마만의 김치볶음밥 맛이 있어. 할머니 것도 맛있지만 엄마만의 그 맛이 있어"라고 말해준 딸이 있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