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정기 검사를 위해 공업사에 와 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는데도 바쁘단 이유로 우리 부부 대신 아빠, 동생이 해주었던 일들.
꼭 은행에 처음 가본 어린아이처럼 낯설고 어색하지만 이렇게 또 새로운 오늘이다. 차를 맡기고 대기실에서 여행 사진을 보며 흐뭇해한다.
행복했던 기억은 이렇게 삶의 비타민이 되어 아무 일이 없는데도 사람을 피식 웃게 만든다.
대기실 안에서 정기 검사에 들어간 b의 자동차를 보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일을 한다는 이유로,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로 분명 내가 할 일들을 날 대신해 수년간 묵묵히 해준 가족들이 있었지. 사실 그동안은 '난 바쁘니까. 나보다는 시간이 많은 아빠가 딸을 위해 이 정도 해줄 수 있잖아.' 하며 다른 가족의 수고로움을 당연시 여겼었다.
워킹만인 딸과 한 집에서 살며 아이들의 밥과 간식, 집안일을 도맡아 해준 친정 엄마에게는 말로는 '고맙다'라고 했지만 막상 집에서 놀아보니 엄마가 그간 날 대신해 해준 수많은 일들은 그저 '고맙다'란 그 세 글자로 표현하기엔 헤아릴 수 조차 크고 힘든 일이었다.
때가 되면 삼시 세끼 뭘 먹일까? 고민을 넘어 고뇌하는 내 모습을 보면서 "볶음밥은 할머니께 맛나지" 서슴없이 이야기하는 아이들과 마주하며, 마흔넷에 된장찌개 끓이는 법을 배우며 신세계라도 맛난 듯 갓 결혼한 새댁처럼 흥분해하는 날 보며, 난 여러모로 부족한 인간이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
세상에 수많은 일 가운데 내 몸에 익어 내가 잘하는 일과 어린아이처럼 하나하나 배워가야 하는 생경한 일을 이제는 다른 누군가가 아닌 내가 해야만 한다.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 그간 날 위해 대신 수고로움을 감내해 준 가족에게 감사한 마음을 갖게 되고, 혹시 모를 그들의 부재에도 당황하지 않을 테니까.
오늘 오전에 청주공예비엔날레 조직위원회로부터 9월 1일부터 개막하는 비엔날레에 지역 작가들과 함께 하는 토크콘서트의 대략적인 진행 방향에 대한 메일을 받았다. 지역에서 문화부 기자 생활을 꽤 오래 한 것이 기회가 되어 이번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어마어마 페스티벌’ 토크콘서트에 사회를 보게 되었다.
패널로는 그간 내가 문화다이어리에서 소개했던 강호생, 손순옥 회화 작가분들도 있고 이번에 처음 알게 되는 사진, 목공예, 금속, 섬유 공예 작가분들도 있다. 토크콘서트 현장에서 작가들과 함께 지역 문화를 이야기하며 관객들과 소통하는 그 시간들이 얼마나 짜릿할까? 벌써부터 심장이 두근거린다. 생방송의 떨림처럼 묘한 긴장감이 그리워질 즈음자유인이 된 내게 온 기회다.
걱정이나 두려움보다는 설렘과 기쁨이 차오르는 거 보면 이 일은 분명 내가 잘할 수 있는 일이고, 좋아하는 일이다. 사직 전 남은 휴가를 다 쓰고 퇴사한 지 석 달째. 그간 이렇다 할 성과라고 할 수 있는 건 브런치스토리 작가로 선정된 후 3권의 브런치북을 발행하고 이번에 '에세이 분야 크리에이터'로 선정돼 배지를 받았다. 네이버로 치면 인플루언서 인증 정도를 받은 거라 할 수 있다. 작가들이 활동하는 플랫폼에서 받은 거라서 누가 알아주든 아니든 뿌듯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다.
가끔 기자 하면서 알게 된 분들 가운데는 내게 "임 작가님" 이렇게 불러주는 분들이 있다. 일기 수준의 글들을 끄적거리며 작가란 호칭으로 불려도 되나 쥐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지만, 내 인생의 '부캐'(부캐릭터)로 쓰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시나브로 쓰다 보면 '작가'란 이름 앞에 최소한 부끄럽진 않을 그날이 언젠가는 올 테니까. 오려나? 올까? 오겠지??
며칠 전 잠자리에 들기 전 딸이 한 말이다. "엄마 삶은 참 드라마 같아. 좋은 일이 생기다가도 또 나쁜 일이 막 생기고, 그게 또 지나가면 좋은 일들이 나타나고. 참 신기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