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 폭풍전야 같았던 마음이 가라앉고 일상을 돌아보던 지난 7월의 어느 날, 뉴스에선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 콘셉트를 미리 기자들에게 알리는 프레스데이 소식과 함께 행사가 5 0일 앞으로 다가왔다는 뉴스가 흘러나왔다.
그 뉴스를 보는데 가슴 한편이 먹먹했다.
지난해 12월 2023 청주공예비엔날레의 강재영 예술감독으로부터 올해 비엔날레 주제가 '사물의 지도 – 공예, 세상을 잇고, 만들고, 사랑하라'로 확정됐다는 소식을 들었던 프레스데이에는 나도 그 자리에 있었는데... 현실은 대낮 거실 소파에서 멍하니 TV자막 스크롤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나로서는 정말 치열하게 기자생활을 했다고 자부했기에 사실 섭섭한 마음보다 후련한 마음 쪽에 부등호가 더 컸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왠지 아쉽고 쓸쓸한 기분이 들었다.
내게 청주공예비엔날레는 청주에 기반을 둔 나의 정체성과 같았고, 나의 삶을 함께 해온 소중한 여행길이었는데 지근거리가 아닌 저만치 떨어져서 지켜봐야 한다는 사실 때문이었을게다.
풋풋했던 스물몇 살의 cjb리포터 시절부터 HCN충북방송 기자가 되고 난 후 한 번도 빠짐없이 비엔날레와 함께한 나에게 비엔날레는 그 자체만으로도 추억이고 사랑이었다.
99학번인 내게 1999년도에 시작된 청주비엔날레는 왠지 모를 운명 같았고, 비엔날레를 품은 파란 가을 하늘은 '꿈' 그 자체였으니까.
또 청주공예비엔날레 속엔 늘 가족이 있었다.
어느 해엔 엄마랑 이모와, 또 어느 해엔 남자 친구와 함께.. 그 남자 친구가 남편이 된 후에는 아이들과 함께 비엔날레 행사장에서 소풍 같은 날들을 보내곤 했다.
기자 생활 초창기 때 취재 중 인터뷰이와 언쟁을 하다 첫 아이가 유산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까꿍이가 내게 찾아왔다. 배가 산만하게 불러온 난 회사의 배려로 거친 취재 현장보다 문화 현장을 더 많이 누비는 호사를 누리기도 했다.
임신 중에 비엔날레 전시장을 하도 많이 돌아다녀서일까?
지금 11살, 13살인 남매들은 게임이라는 세계에 빠지기 전까지 한 동안 두 녀석 모두 장래 희망이 화가였다. 2007년 청주 예술의 전당 프레스룸에서 카메라 선배가 찍어준 사진을 다시 꺼내보니 그때 맡았던 국화꽃 향기가 주변을 감싸는 듯하다.
지금 다시 보니 참 쑥스럽기만 한 한 장의 사진. 비엔날레가 끝나면 곧 소멸되어 버릴 역사의 순간을 놓치기 싫어 잔뜩 포즈를 취하고 강홍석 작가의 작품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60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견뎌온 먼지, 켜켜이 쌓인 어마무시한 쓰레기를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에게 느꼈던 감동이란......
이렇게 비엔날레는 아름다운 조각들로 박혀 내 가슴속에 있다.
올해는 기자가 아닌 시민으로서 편하게 작품을 봐야겠구나 생각하고 있는데 뜻밖의 연락이 왔다.
9월 2일부터 10월 7일까지 매주 토요일마다 동부창고에서 진행될 '어마어마 페스티벌' 토크콘서트에 진행을 맡아 달라는 연락이었다. 그때 다시 한번 느꼈다. 내가 얼마나 청주공예비엔날레를 아끼고 사랑하는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행사 진행을 맡기로 했다.
이번 토크콘서트는 청주공예비엔날레가 시민과 함께하는 열린 비엔날레로 거듭나기 위해
자신만의 재능과 방법으로 지속 가능한 예술 활동을 하는 예술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다.
사진 작가를 시작으로 도자, 섬유, 목공예, 전통, 회화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선다.
처음에는 단순히 사회만 보면 되는 줄 알았는데 원고부터 구성, 작가들과의 사전 인터뷰 등도 진행해야 했다.
베트남으로 휴가를 다녀온 뒤 탱자탱자하다 날짜가 다가오니 정신이 번뜩 나기 시작했다.
나흘간 아침부터 새벽까지 원고를 쓰고 몇몇 작가님들과 간단한 전화 통화를 했다. 열심히 놀다가 오랜만에 일이란 걸 좀 했더니 어깨랑 팔이 쑤셔 파스를 붙였다.
PPT 마무리 작업을 하는데 경남 양산에 있는 목공예 명장에게 전화가 왔다.
"작가님 원고 잘 받았습니다. 제가 조금 더 추가하고 싶은 내용이 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요?"
작가님? 작가님! 기자님은 들어봤어도 한 번도 보지 못한 분께 작가님이란 소리를 들으니 기분이 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