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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가영 Oct 08. 2023

그림 앞에 서면 눈물이 나는 이유

강호생, 손순옥... 화가의 삶을 엿보다


청주공예비엔날레 본전시가 열리고 있는 문화제조창의 분주함과 달리 옛 담뱃잎 창고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조성한 동부창고는 한결 여유롭게 느껴진다. 초록빛 잔디밭 아래 버스킹 공연을 하는 아마추어 싱어송라이터의 감미로운 목소리를 들으며 토크콘서트가 진행될 빛내림홀로 향한다. 유난히 눈부신 가을이다.


늦여름의 절정을 달리던 8월 말 청주공예비엔날레 어마어마페스티벌 토크콘서트 진행을 맡아 달라는 한 통의 전화를 받고 백수 놀이가 한창이던 내가 얼마나 기뻐했는지를 떠올리며 한 걸음 한 걸음 걷는다. 비엔날레 조직위원회에선 진행을 맡아달라고 했지만 사실상 토크콘서트에 출연할 작가들에 대한 자료조사부터 질문지 작성, 약식의 사전 인터뷰, PPT초안, 큐카드 제작 등 몇 날며칠을 새벽까지 준비하며 공 들여온 시간이었다.


사진, 도자, 섬유, 전통, 목공 분야의 작가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던 지난 4차례의 토크콘서트를 지나 마지막날인 오늘이 되기까지 시간을 거꾸로 되돌려본다.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기까지 저마다의 방식으로 혼과 열을 다해 치열하게 인생을 살아온 그들의 삶을 잠시나마 반추해 보며 순간순간 행복했었지. 매주 토요일마다 열렸던 그 시간들을 지나오는 늦여름과 가을 사이 내게도 큰 변화가 생겼다.

 

인디언핑크의 여름 원피스를 입고 첫 진행을 맡았던 그때는 미래에 대한 알 수 없는 불안감과 막연한 희망 사이에서 고심했던 백수였지만 5회 차 콘서트 무대에 선 지금은 새로운 직업을 갖게 되었다. 17년 간 보도자료에 나온 인사 기사는 숱하게 많이 써봤지만 내 이름 석자가 기사에 나올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던 꿈같은 지난 며칠. 어제 첫 출근을 한 후 갖는 마지막 행사여서인지 더욱 뭉클하게 다가온다.


행사 시작보다 40분 정도 일찍 도착한 홀에는 비엔날레 관계자 몇 명만 자리할 뿐 아직은 텅 빈자리. 연극영화과에 다닐 때 자주 봤던 대극장의 텅 빈 플로워가 오버랩되어 쓸쓸한 기분이 든다. 콘서트홀 벽면에 강호생 화백의 그림을 뚫어지게 바라본다. 기존의 봐왔던 수묵화와는 확연히 다른 그의 작품을 처음 마주 했을 때의 전율과 어디에서부터 올라온 것일지 모를 슬픔의 잔재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오늘 함께 이야기 나눌 강 화백의 최근작 '생명의 부르심' 시리즈다. 수묵에 현대적 기법이 감각적이면서도 여백의 미를 살려 보는 이들로 하여금 사유의 시간을 불어넣는다.







똑같은 그림이라 할지라도 자신이 처한 상황에 따라 그림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일을 그만둔 뒤 마음속의 숱한 감정들이 뒤죽박죽 엉켜있던 상태에서 이 그림을 봤을 땐 두 눈 가득 눈물이 고였었다.


검은 먹의 번짐은 몽환적이면서도 신비했고, 둥근 구를 이룬 작은 방울들은 인간 생명의 출발점인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생명의 본질인 그 무언가와도 닮아 보였다. 제 아무리 잘났다고 기세 등등 한 인간이라 할지라도 내 눈에는 신의 손가락 안에 있는 하찮은 미물에 불과할 뿐이라고 느껴졌으니까.


그런데 새 직장에 대한 부푼 기대로 가득 찬 오늘의 시선으로 바라보니 강화백의 작품에서 희망과 사랑이 느껴지는 것이 아닌가.

단 몇 초만에 작품을 보는 이에게 전율을 선사하는 그의 작품만큼이나 토크콘서트에서 보여준 그의 입담 역시 내공이 묻어났다.


"우리가 바라보는 것은 보이는 것들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들이라.
이는 보이는 것들은 잠깐 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들은 영원하기 때문이라"


작가가 성경의 고린도후서를 인용한 것처럼 작품 속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님을 인간의 삶에 빗대어 말한다.

수묵의 붓 터치 한 번으로 빠른 시간에 작품은 완성되지만, 작품 속 그 한 번의 터치를 위해 수 천 번 수 만 번의 붓질을 했다는 그. 인간의 삶 역시 결과물만 볼게 아니라 인고의 과정이 있어야 결과 또한 빛이 난다는 걸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


취재기자 시절 강 화백의 작업실을 가면 그의 유머러스한 유쾌한 입담 덕에 일을 한다는 느낌이 안들 정도로 한바탕 웃고 나오곤 했다. 하지만 자신의 그림을 이야기하는 순간에는 그 어느 때보다 진지했고, 그림에 대한 열정과 사랑이 가득 느껴졌다.


"아마 내가 그림 그리는 모습을 누군가 캠코더로 찍어 본다면 아마 미친놈이라고 할지도 몰라요.

작품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머릿속에 용암이 발끝까지 흘러내리는 것처럼 뜨거워 고통스러워요.

미친놈처럼 뛰어다니기도 하고 한 없는 사색에 잠겨 붓이 들어지지 않을 때도 있어요."




작품에 대한 고뇌와 고통을 이야기하는 강 화백의 모습을 같은 심정으로 바라보는 한 사람.

이날 콘서트 패널로 함께한 작가는 눈가가 촉촉해져 그의 이야기를 듣는다.

전혀  다른 결의 작업으로 많은 이들에게 채송화 작가로 알려진 있는 손순옥 씨다.


그와 인연은 10여 년 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청주에 유일한 상업갤러리였던 무심갤러리에서 열렸던 전시 인터뷰를 위해 전시장을 찾았다가 난생처음으로 내 돈 주고 그림을 구입한 내겐 정말 특별한 작가이다.


 


초록을 배경으로 한 형형색색의 채송화 속에 갤러리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한줄기 햇살이 드리운 순간 첫눈에 반해버렸으니까. 지금도 그 작품은 우리 집 거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내가 그림을 사랑하게 된 첫 마음.

첫 작품이어서 이번 콘서트는 더욱 의미가 깊다.




"꽤 오랜 기간 채송화를 그리셨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장독대 옆이나 담벼락 아래 작게 핀 채송화는 몸을 구부리고 앉아서 찬찬히 바라봐야 해요.
낮은 자리에서 온 힘을 다해 다른 빛깔의 꽃을 피워내는 채송화가 눈에 들어왔어요.
세상은 유기적으로 촘촘히 연결돼 있고 채송화처럼 모두가 맞닿아 있어요.
그런 마음에서죠.
모두가 아름답고 평화롭게 함께 사는 세상을 꿈꾸는
그런 마음을 담아 채송화를 그려요.


화면 가득 담을 수 없을 정도로 뻗어나가는 채송화의 에너지를 그림 한 점에 담아내는 그의 언어는 그림처럼 예뻤다.


작품은 작가를 닮는다.


한 길을 묵묵히 걸으며 자신만의 수묵화를 만들어낸 강호생 화백의 작품을 가만히 바라보면 예술을 향한 작가의 집념과 자신의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가 저절로 그려진다.


얼핏 보기에는 낮은 자리에서 피는 스쳐 지날 수 있는 그런 작은 꽃이지만

온 힘을 다해 뻗어나가는 채송화의 아름다움을 더욱 빛나게 하는 손순옥.


그들의 작품처럼 알게 모르게 연결돼 있는 우리 사회도 더욱 환해지기를...

작품 앞에서 느껴지는 숭고함으로 나 자신은 더욱 겸손해지기를...


작가들의 그림 앞에서 난 때론 눈물이 나기도 하고

다시 오지 않을 오늘을 살아가며 희망을 엿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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