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머리에 마취액이 솔솔 뿌려진 것처럼 쏟아지는 잠을 이겨내기 힘든 시간을 보냈다. 피곤함은 물론, 반복적인 일상이 계속해서 나를 침대로 끌고 갔다.
여느 때와 다르지 않게 출근길 지하철 역에 들어섰고 항상 늦장 부리는 4호선을 기다렸다. 빠르게 자리를 확보한 뒤 눈을 감겠다는 의지로, 들어오는 열차를 뚫어져라 째려봤다. 하지만 들어오는 열차는 다름 아닌 만석이었다. 원망의 눈초리를 거두고 빠르게 반대편 칸으로 걸어갔다. 반대편에는 나와 같은 눈을 뜨고 내쪽으로 걸어왔다. 반대편 칸도 점령당했구나, 하고 그냥 한 좌석 앞에 서게 되었다.
앞으로 맨 가방이 자꾸만 패딩에 미끄러졌다. 원래 키가 작아 짐칸에 올릴 엄두를 잘 내지 않지만 지금 올리지 않으면 몇 정거장 뒤에 더 큰 고통이 찾아올 것이었다. 그래서 가방을 만지작거렸다. 속으로 기합을 다지고서 힘을 주려던 찰나, 앞에 앉아계시던 할아버지가 번쩍 일어나 나의 가방을 올려주셨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헤드셋부터 벗어던지고 감사하다는 인사를 드렸다. 뒤이어 어디서 내리냐는 질문을 하셨고 한 정거장 차이라며 아쉬워하셨다. 아마도 나를 자리에 앉히고 싶으셨던 것 같았다. 빠르고 정확하게 받은 친절에 뇌가 저릿저릿, 마음이 부슬부슬 되고 있었다. 할아버지의 친절에 빠져서 오늘 하루, 나는 친절왕이 되어서 이 친절을 나누어주겠다며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그런데 할아버지 옆에 계시던 아주머니께서 나를 뚫어져라 보고 계시는 것이었다. 따가운 시선이 두려워서 두 눈을 감아도보고 먼산을 보기도 했다. 그러다 갑자기 아주머니께서 나의 허리를 잡아 끌어 오셨다.
아주머니는 나를 본인의 자리에 앉히시고는 곧장 나가버리셨다. 나를 그렇게 바라보신 이유를 그때 알게 되었다. 또다시 빠르고 정확한 친절과 배려를 받고, 나는 다시 헤드셋을 벗어던지며 이미 저 끝에 뒷모습만 보이는 아주머니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자리에 앉아 친절함이란 도대체 무엇이며 삶을 이토록 풍만하게 만들어주는지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 친절은 연쇄반응이구나!
친절과 다정은 큰 파워다. 친절과 다정을 위해서는 사랑이 필요하다. 그래서 친절, 다정, 사랑은 절대 뗄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큰 힘은 나뿐만이 아니라 주변사람에게도 향기처럼 자연스럽게 스며들게 된다.
나 또한 그 일을 생각하면 여전히 기분이 좋아지고, 그 친절과 다정을 언제든 필요한 이에게 돌려주고자 벼르고 있으니 말이다!
20대부터 어떤 어른이 되고 싶다는 질문에 매번, 다정한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문득 그동안 어떤 어른으로 삶을 대하고 사람을 대해 왔었는지 생각해 보았다. 먹고살기 바쁘다며 최소한의 에너지와 사랑만 남겨둔 채 뾰족뾰족 철 옷을 입은 것 같은 지난 내 모습이 떠올랐다.
작은 친절과 다정이라고는 하지만 나에게는 최근의 삶의 태도를 꼬집힌 큰 일이었다.
여전히 나는 다정한 어른, 친절한 어른이 되기에 부족하다. 멀리 간다며 바닥에 버렸던, 내팽개친 사랑을 다시 주워 담아야지. 삶의 방향과 태도를 잃지 말아야지. 이토록 쌀쌀해진 날씨이지만 잊지 말고 따뜻해져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