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취향을 읽다 보면 자연스레 나의 세계도 넓어지게 되는 것 같다.
책으로든 팟캐스트든, 아니면 친구와의 수다에서든 우리는 자연스레 타인의 세계를 접할 수 있다.
취향을 공유하거나 알리는 것의 가장 큰 장점은, 직간접적으로 세상에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동시에 자신에게 스스로를 각인시켜주는 활동이기도 하다.
가끔 스스로도 이해가 안 되지만, 내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 나의 취향이 어떤 것이었는지를 까먹을 때가 있다. 그저 살아가는 궤적에 따라, 분위기에 따라 당겨 만들어진 취향이 있었을 뿐 자신 있게 "이게 제 취향입니다."라고 말할 '자신만만' 취향점은 찾지 못했다.
어릴 적에는 분명 양손 가득 들고 다니며 자랑하기 바빴는데 말이다.
물론 타인의 취향 속 뾰족한 점이 나를 찌를 때도 많다. 몇몇은 강요당하는 취향도 있다. 예를 들면 나는 달달한 향보다는 히노끼탕과 나무 그을린 강한 향을 좋아하는데, 그런 향은 나와 어울리지 않다는 이유로 아빠에게 넘겨준 나의 향수들이 있다. 세상과 타협한 취향의 중간지점이 지금 몇 개 손안에 있는 듯하다.
최근에는 서점에서 [어떤 탕수육_김마리 저자]이라는 책을 보게 되었다. 노란 표지의 작게 탕수육 한 그릇이 박혀 있는 책을 보자마자 자리에 멈췄다. 책 안에 탕수육 사진이 대문짝만 한 게 붙어있다면, 나는 무조건 살 거다 라며 속으로 다짐하고 책장을 넘겼다. 무려 컬러로 된 탕수육들이 이어졌다. 재빨리 구매 후 탕수육을 감상했다.
나는 사실 어릴 때 밥보다 탕수육을 더 많이 먹고, 유치원보다 시장에 더 많이 가던 탕수육 킬러였다.
탕수육을 먹기 위해 할머니를 따라 시장을 나섰고 종이컵에 담긴 탕수육을 쥐고 돌아다니는 게 큰 행복이었다. 케첩 맛이 낭낭하게 느껴지던 옛날 탕수육을 아직도 좋아하며 사실 어제도 탕수육을 시켜 먹었다.
내가 좋아하는 탕수육은 케첩 맛 탕수육인데, 탕수육 중에서도 비주류인 것인지 생각보다 좋아하는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골고루 모아놓은 탕수육 책에는 볶은 탕수육, 부어먹는 탕수육, 찍어먹는 탕수육 등등 다양했다. 어느 탕수육도 차별 없이.
탕수육에 자신의 이야기를 담아 쓴 탕수육 책이라는 것이 너무나 흥분되었다. 자신의 취향을 소중히 간직하여 건네는 사람들이 정말 사랑스러워서 미칠 지경이었다. 어른이 되며 적당한 사회적 눈치를 보며 투박한 케첩 탕수육이 아닌 꿔바로우를 시켜야 했던, 아니면 적당히 탕짜면에서 타협했던 지난날이 떠올랐다.
투박하고 못생긴 옛날 탕수육처럼 나에게 소중했던 추억이자, 스토리이던 것들이 나에게는 취향인 것 같다.
누군가는 내게 그것이 세련된 취향이 아니라고 말할지라도, 소중한 것을 세상에서 잃지 않고 간직하는 것이 내 취미이고 취향이라고 생각한다.
나의 취향
: 바삭 튀겨진 탕수육과 케첩맛 소스 / 형광색 긴 양말 / 빨간 바지 / 주황 신발 / 히노끼탕 향 / 종이책 / 주황색 티셔츠 / 지나치게 뽀글거리는 머리 / 보색의 조합 / 아무것도 바르지않은 식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