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애입니다. 그런데 서른을 곁들인...
내가 그날 숲길에서 본 것은 트럼펫을 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점을 넘어, 나에게 현실을 바라보게 해 준 계기가 되었다. 내가 있던 그 공간은 자유가 당연한 분위기였다. 사실 레일을 따라 뛰는 사람들, 함부로 반대쪽으로 걸어갈 수 없는 규칙들이 분명 존재했지만 그 안에서 각자 자신의 시간을 책임지고 즐기는 모습이 평화로워보였다. 문득 드는 생각, 나는 지금 내 시간을 책임지고 있는가?
일단 그 시간만큼은 나만을 책임지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거창한 이유들 때문이 아니라 그날 눈앞의 모든 것들이 독립을 부추기기에 충분했다. 독립이라는 항아리에 매일 조금씩 빗물이 고여 그것을 더 이상 무시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날 이후부터 나는 쭉 독립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독립을 하면 무엇을 할까 보다는, 현실적으로 독립을 어떻게 해야 할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했다. 역시 돈이 문제였다. 독립에는 많은 돈이 든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동산에 찍힌 숫자들은 작은 나를 더욱 작게 만들기 시작했다.
숲 길을 다녀온 이후, 나는 주변사람들이 모두 걱정할 정도로 어두워졌다. 상쾌하지만은 않은 현실에 매일 밤 흠씬 두들겨 맞은 탓이었다. 새벽까지 스크랩한 집들과 모아둔 돈을 번갈아보며 점점 멀어지는 독립. 결국 보다 못한 아빠의 호출로 독립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았다. 독립, 돈, 직장, 책임감에 대하여 이야기하다 보니 서른 살의 다 큰 딸은 눈물콧물 범벅의 어린이가 되었다. 열심히 돈을 모아서 내 힘으로 나가볼게!라고 말하는 나를 보며 아빠는 굳게 다문 입으로 끄덕여주었다.
독립은 무엇이며 왜 나는 계시받은 사람처럼 독립을 향해 무작정 가려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10년 전, 독립을 가장 먼저 한 나의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듣고 "너에게도 혼자 살아볼 기회를 주는 것이지만, 가족들도 어떻게 혼자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할 기회를 갖는 것이다."라고 했고, 친한 누님(언니)은 "나로서 살아볼 수 있는 시간은 이때뿐이니 즐겨."라고 했다. 그리고선 내 팔을 만지며 이렇게 말했다. "이것 봐~ 아직 말랑말랑 애기잖아~."
나의 독립은 어쩌면 누군가의 손녀, 딸, 언니에서 독립하여 나만을 바라보는 시간을 갖고자 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동시에 아빠, 할머니, 동생은 어쩌지? 하는 목 막힌 책임감이 들 때마다 누님의 말씀하신 애기를 떠올린다.
애기는 본디 굳은살이 없다. 말랑말랑하고 여린 살을 가졌다. 나는 이 날 서른이지만 뭉친 근육 같은 압박감도, 굳은살 같은 책임감도 없는 애기로 자신을 임명했다.
묵혀진 나잇값에 눌려 뛰는 법도, 미소 짓는 법도 까먹는 어른이 되기 전에 웃으며 가볍게 달려 나가는, 그러다 퍽 넘어져 울어버리기도 하는 멋진 애기가 되어야겠다. 내 웃는 얼굴만 봐도 용서가 될 나이는 훨씬 지났지만, 응! 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