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르시시스트(이하 나르)와 헤어질 결심을 하곤 이를 실행하는 계획적이고 침착한 행동보다, 분노와 단절이라는 방식으로 결별을 실행하고 있다.
남편과 별거하기 몇 년 전부터 불안과 분노가 함께 찾아왔다. 불안하면 여행 혹은 친목이라는 명목으로 며칠간 집을 떠나 떠돌아다녔고, 분노가 찾아오면 방문을 닫았다. 타고난 성정은 불같음을 느꼈겠지만, 그냥 시골 여성으로 살려 던 아내가 어느 날부터, 태클을 걸어오니 남편이나 아이들의 혼란도 만만치 않았으리라. 하지만 내 안의 분노는 자꾸 밖으로 튀어 나갔다. 결국 뜨거운 솥 안의 팝콘처럼 튀어 오르던 분노는 새까맣게 타기 전에 폭발하여 솥뚜껑을 열어젖혔다.
그렇게 2년째 제주살이를 하며 돌아보니, 내 삶을 채우던 나르들과 결별하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이런 시간이 내게 필요했음이리라.
내가 경험한 나르들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우울질 기질이다. 2. 입에 집착이 강하다. 3. 근자감을 살리기 위해 사회운동을 한다. 그리고 자기반성이란 단어조차 모른다.
나르들의 우울 성향은 나르키소스가 호수에 비친 자신의 모습에 취하 듯, 주기적으로 내면의 호수에 취하는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호기롭고 자신감이 있는 듯하나, 실제로 그들이 행복한 시간은 호수에 비친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하는 시간이다. 그들의 삶은 평생 조울(躁鬱)의 파도를 탄다.
입 혹은 입맛에 천착(穿鑿)한다. 언변이 좋지는 않지만, 계속 자신의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한다. 특히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화려했던 그래서 행복했던 시간을, 무한반복한다. 이 또한 내면의 호수와 접선하려는 그들의 행동유형이다. 이에 더해 자신의 고유한 식습관, 입맛을 숭배하고 지키려 한다. 그래서 여러 명이 동행할 때도 메뉴를 고르고 식당을 자기가 정한다.
사회운동을 통해 거대한 사회구조에서는 그 능력으로는 절대로 다다를 수 없는 성취감을 느낀다. 빈약한 보수를 받고, 약자를 도우면서 그들은 자신의 아름다운 모습과 또다시 사랑에 빠진다. 그러다 전혀 다른 입장에서 조망을 받으면, 거침없이 옮겨 가는 것이 이들의 특징이다. 결국 나르들의 목표는 자기애(自己愛)이기 때문이다.
자기반성? 그게 뭐야? 이렇게 멋진 내가 뭘 반성해야 하지? 물밑에 감춰진 진실을 보게 되는 것이, 그들에겐 가장 두려운 일이다.
신기하게도 남편을 시작으로 나는 주변의 나르들과 싸우거나 단절하는 방식으로 결별하고 있다. 물론 나에게도 그런 성향이 있겠지만, 내가 느끼기로 나의 나르 성향은 그들에 비하면 너무 미약해서 그들을 동경했던 듯하다. 내 주변에 나르들이 그리 많았던 이유가 납득이 되는 시간이다.
이제 나는 밝고 착하고 배려하는 하기보다는, 분노하고 싸우는 사람이 되려 한다.
Bye bye ~ Narcissi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