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자가 아닌 아이가 이야기하는 부모의 역할
전이수 글 그림, 2022, 글의 온도.
'나는 전이수다. 나는 오늘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오늘이 모여 내가 되고 세월이 되고 역사가 되니까.’ (p4 여는 글 中) 2008년 生인 작가가 2018년부터 2021년, 10살부터 13살까지의 쓴 일기를 모은 책이다. 내가 초등 일기에 대한 리뷰를 쓰고 싶을 줄이야…
전이수 작가 스스로 깊고 풍부한 감성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지만, 이를 발현하도록 지지해 준 것은 부모였다. 작가의 일기에는 ‘엄마’가 유독 많이 나온다. 아픈 엄마, 일을 많이 하는 엄마, 친구이자 사랑인 엄마,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엄마, 아이들 안에 있는 말을 이해하는 엄마, 심지어 엄마의 고향마을 콩국까지…
일어나면 엄마가 나를 제일 먼저 반겨준다. “잘 잤어? 오늘도 행복하게 지내자. 힘내자!”(p262, 행복해진다는 건 中)
엄마는 이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만 보았다. 그러고는 나와 우태를 불렀다. 엄마는 나와 우태에게 이야기 하나를 들려주었다. (p214, 소중한 사람 中)
어른들은 “왜 그래? 뭐 때문에 그래? 답답해! 빨리 말해봐!”라고 다그치지만, 우리는 번역해 주기만 기다릴 뿐, 진짜 내 안에 있는 말을 잘하지 않는다. (중략) 그걸 아는 어른이 되어서 우리를 바라봐주는 엄마가 고맙다. (p56-58, 우리의 언어)
부모는 훈육에 관한 입장에서 아이들이 소유냐, 존재냐? 의 갈림길에 있다. 물론 중도라는 길도 있으므로, 대부분은 중도라는 명분으로 ‘소유’의 저력을 외면하고자 하나, 너의 존재를 위해 어느 정도 나(부모)의 통제는 필요하다는 입장으로 ‘소유권’을 어쩌면, 내내 행사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
요즘 육아 관련 프로그램으로 수면교육, 영유아 발달검사에 따른 순위매김, 일정한 생활패턴 유지하기 위한 기술 등 아이들에게 이런저런 상황을 만들어 제재를 가하는 행동수정 프로그램이 대두되고 있는 측면 역시, 아이들을 통제하고 길들이려는 ‘소유’의 입장으로 다가간 교육방식으로 볼 수 있다. ‘인디언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 왜? 비가 올 때까지 지내기 때문’이라는 웃픈 소리처럼 말랑말랑한 아이들에게 노련한 훈련가가 원할 때까지 행동수정을 가하면 어찌 변화가 없겠는가? 하지만 대부분의 부모들은 그리 노련하지 않고, 따라 하다가 낭패를 보는 일이 더 많다. 그리고 아이들은? 상처받은 아이들은?
어른들은 잊고 있나 보다. 어른들도 어린아이였다는 사실을… (p38, 우태의 눈물 中)
부모들이 아이들을 개별 존재 자체로 인정한다면, 과연 내 아이의 행동이 왜, 수정되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해야 한다. 「이수의 일기」를 읽으면 작가의 부모는 네 아이들을 존재 그 자체로 인정하며, 아이들에게 모범을 보이는 사람으로 다가간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그 자체로 인정하고 기다려 주는 사람 그리고 용기를 내어 행동하는 부모. 그것을 작가는 차근차근 모방한다. 그렇게 엄마(부모)는 작가에게 삶의 이정표가 된다. 어느 시기가 되면 이러한 모방의 단계가 지나지만, 그때까지 부모의 역할은 행동수정을 하는 훈육자가 아니라, 모범을 보이는 자이다.
아이들은 부모를 먹고 자란다고 한다. 그만큼 부모의 일거수일투족은 아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때 부모가 아이들에게 일방적으로 지시한다면, 아이는 무언가 지시하는 내용은 잊고 지시하는 태도만 배우게 된다. 하지만 부모가 솔선수범하는 생활과 바른 말투와 행동 그리고 부모의 보이지 않는 마음가짐은 독립적으로 자고, 언어능력이 상위 몇 % 인가 보다 더 중요한 아이들 삶의 밑천이 된다.
이수가 부모에게 받은 사랑과 배려 그리고 이를 실천할 용기가 담긴 책 「이수의 일기」는 진정 부모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학자가 아닌 아이가 부모에게 이야기하는 귀한 책이다. 나는 이 책을 부모교육도서로 추천한다.
*현재 작가는 제주도 함덕바다가 보이는 곳에 갤러리 「걸어가는 늑대들」을 가족과 함께 운영하며 미얀마 난민학교, 아프리카 친구들, 제주 미혼모센터, 국경 없는 이사회 등 소중한 가치를 지켜가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작가 소개 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