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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Sep 26. 2023

8월 18일  놈새와 장래 희망

소싯적 친구가 좋은 이유


A, B, C는 일정을 마무리하고 나면, 모여 앉아 차와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눈다. 서로의 관심사나, 근래에 겪었던 일들, 친구들의 근황을 서로 물어보기도 한다. 혹은 어릴 적 이야기를 하며 A, B, C는 만나기 전의 기억을 공유한다.


대체로 유년기 기억이 선명한 친구는 A. 식구도 많았고 A의 엄마가 품이 넓은 분이라 늘 사람들로 북적였던 탓도 있어 A의 이야기는 사람 냄새났던, 어릴 적 그 시대를 생생히 가져온다.


A : 우리 옆집에 딸 여섯에 막내로 아들을 낳은 집이 있었어. 나는 그중 다섯째와 동갑이었어. 여섯째 딸은 다음엔 꼭 남동생을 보라는 이 씨 가문의 염원을 담아 집에서 ‘놈새’라고 불렀어. 놈새야, 놈새야. (A는 놈세일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이의를 제기한다.)


C : 왜 하필 놈새야? 이 놈의 새끼의 준말인가? 까르르.


A, B, C는 배를 잡고 뒹굴며 웃는다. A는 이미 알고 있는, 자기가 하는 이야기에 스스로도 웃음을 멈추지 못한다.


A : 초등학교 2학년 때인가? 장래 희망을 쓰는 시간이었는데, 내 앞에 있던 놈새의 언니 것을 힐끗 보니, 아니 장래 희망이 A는 또 먼저 웃어버린다.


C : 뭐야? 뭔데.


A : 아 하하하..... 할머니.


A, B, C는 또 한바탕 눈물 나게 웃는다. 인생 60이 되니, 9살 여자아이의 장래 희망이 된 할머니의 위상이 떠 올랐기 때문이다. 야... 너무 웃프다. 그리고 A 친구 참 사랑스럽다. 사랑? 그렇지 그런 현실 세계를 그대로 보여준 천진함과 우리 삶의 폭폭 함에 치어스.... 어느 정도 그림은 나왔지만, 그래도 진실을 알아야겠기에,


C : 그런데 왜 하필 장래 희망이 할머니야?? 큭큭.....


A : 내가 게네 집에 자주 놀러 갔거든. 잠도 자고 오고. 게네 집에 가서 밥을 먹으면, 그럴듯한 네모난 나무 밥상에 할머니와 아버지 그리고 막내아들 **가 밥을 먹고, 나머지 여섯 딸과 엄마는 둥근 양철 꽃무늬 밥상에 둘러앉아 밥을 먹었어. 반찬을 따로 놓지도 않고, 커다란 양푼에 밥을 넣고 이것저것 넣어 비벼서 막 퍼먹었어. 나도 그 옆에 끼어 밥을 먹곤 했어.


C : 그러네, 놈새 언니는 여자로서 번듯한 밥상을 받는 할머니가 장래 희망이 될 만큼 크게 보였겠네.


A : 게네 할머니는 시장에서 좌판을 펼치고 장사를 했어. 엄마는 아이가 일곱이나 되니 집에서 살림하고 말이야. 밥때가 되면 집에 와서 네모난 밥상에서 엄마가 차린 밥을 드셨데.


C : 할머니는 경제권도 갖고 있었네..... 그래도 장래 희망이 할머니라니.... 밥상과 경제권은 그렇다 치더라도, 할머니의 주름은 어쩌고..... 결국 놈새 언니는 할머니가 되었겠군. 장래 희망대로 말이야.


A, B, C는 여행 내내 차에서, 모닥불 앞에서 혹은 A의 집에서 그렇게 A, B, C를 만든 시간을 이야기했다. A, B, C는 좀 더 서로를 잘 알게 된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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