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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Oct 21. 2023

耳順, 그리고 심리상담

10월 20일  드디어 심리상담에 들어가다.

여기 오는 길이 참 예뻐요. 인터넷 검색으로 그냥 심리상담이 아니라, ‘정신분석’이라고 나와있어서 왔어요. 선생님. 정신분석은 제 로망이었어요. 언젠가 꼭 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하게 되네요. 뭐,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고 했으니... 제 꿈이 이뤄지긴 하는 걸까요?.     


 제가 생각해도 이상해요. 이런 것으로 그렇게까지 화가 나니 말이에요. 예를 들면 남편이 저녁을 혼자 먹고, 자기가 먹은 밥그릇과 숟가락을 그대로 설거지통에 넣어두는 것 말이에요. 또 조금 일찍 신경 써서 전화 한 통 하면, 저도 나도 편했을 것을, 놀다가 저녁준비 다 끝나고 전화 와서 “오늘 저녁 먹고 갈게.” 혹은 아예 전화도 안 올 때도요. 제 화의 정도는 한 마디로 ‘이래서 살인이 날 수도 있겠구나.’ 예요. 한편으론 뭐 이런 일로 화가 그리 날까? 싶기도 해요. 그렇잖아요. 그럴 수도 있는 일이잖아요. 하지만 제 안의 무언가가 훅 솟구치며, ‘안 돼!’라고 단호히 말해요. 그럼 저는 ‘그래, 이렇게 사는 건 아니지.’ 하고 행동하지요.


단지 지금 일어난 일만 생각한다면? 제가 미친년이지요. 하지만 제가 이런 미친년이 되기까지? 도대체 무슨 일이 었었을까요? 예를 들면 이런 일이었어요. 제가 사는 곳은 시골이라 30여 년 전에는 차도 별로 안 다니는 곳이었어요. 밤이 되면 그야말로 적막강산이지요. 저희 집은 동네와도 떨어져서 길가에 덜렁 한 채가 있는 작은 집이었구요. 남편이 아기돼지 삼 형제의 셋째처럼 벽돌로 지은, 문이나 창문을 잠그는 것이 별로 소용없는 집 말이에요. 그런 집에서 셋이 살았는데, 남편이 가끔 집에 안 들어와요. 핸드폰은 없어도 집 전화가 있을 때니, 전화를 할 수도 있었는데, 전화도 없이 말이지요. 그럼 저는 무섭다가 화가 나다가, 기다리다가, 울다가 하면서 밤을 새우지요. 아마 아기에게도 그런 제 불안함이 전해졌을 테고요. 잠깐, 그래도 엄마는 그러면 안 돼요. 아이를 위해 단단해지셔야지요. 그런 터무니없는 교훈은 사양입니다.      


그렇게 밤을 꼬박 새우고 저는 아이를 데리고 출근을 합니다. 그럼 제 퇴근보다 먼저 들어와 있는 남편이 있지요. 도대체 어디 갔었냐? 친구들과 술 먹다가 잠들었다. 전화도 못하냐? 쪽 팔려서 어떻게 하냐. 그때 딱! 그만두었어야 했어요. 저와 제 새끼가 외로움과 두려움에 떨며 지낸 시간보다 자기의 ‘쪽’이 더 중요한 사람에게 무얼 더 바라겠어요? 하지만 전 무언가 바라는 게 있었는지? 그만두질 못했답니다. 그러고 보니, 또 제 잘못이네요.      


계속 이런 식으로 살았습니다. 너무 심하다 싶으면, 제가 아이를 데리고 집을 나가기도 했고요. 혹은 마음의 문과 함께 주부로서의 일도 닫고 며칠을 지내기도 했구요. 이런 삶이 35년째 쳇바퀴돌 듯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 어패가 있네요. 아이가 어릴 때야, 아빠의 손도 필요하고 저도 어려웠지만, 읍내의 아파트로 이사 오고 아이들도 크니, 남편의 여전한 습관이 어느 정도 그러려니 해지는 부분이 생기기는 했습니다. 안 들어오면 오히려 편안함과 안정감의 레벨이 올라가기도 했으니까요.


하지만 다시 시골로 금의환향하듯이 집을 짓고 이사 오면서, 묻어 두려 했던 남편에 대한 저의 분노가 수면 위로 올라왔습니다. 자기의 ‘쪽’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그 태도는 여전히, 혹은 좀 더 상승세를 타고 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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