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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Oct 30. 2023

耳順, 그리고 심리상담

10월 27일  두 번째 상담

선생님 전 귀신이 무서워요. 네? 뭐가 무섭다구요? (이는 모든 사람들의 반응과 똑같다. 꼭 두 번씩 말하게 한다.) 귀신이요. 혹시 보신 적 있으세요? 아니요. 선생님이 생각하는 귀신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글쎄요. 실체가 없으니, 더 무서운 것 같아요. 어릴 때 본 요괴인간, 전설의 고향, 엑소시스트 등이 혼합된 듯한 상상을 하지만, 실제로 보진 못 했어요.


그래서 혼자 여행을 가면 숙소 곳곳의 불을 다 켜 놓고 밤을 보내지요. 잠을 잔다기보다는 그냥 밤을 보낸다는 게 맞아요. 혼자의 여행을 고집하는 이유도, 제 안의 실체가 없는 그 무엇인가와 맞닿으려는 시도 같기도 하지만, 실은 무서움을 많이 타서 어두워지면 사람의 온기가 더 필요한 사람이지요.      


불 빛 많은 도시에, 게다가 아파트 생활을 오래 한 저는, 시골에 스며드는 어두움과 격리가 어린아이처럼 무서웠답니다. 저의 이러한 겁 많은 어린아이 같은 부분이 남편과의 관계에 작용되었다고 여겨져요. 순전히 제 생각이긴 하지만요. 제가 무섭다고 하면, 예의 남편은 뭐가 무섭냐고, 면박을 주었지요. 아이를 혼내듯이 말이에요. 자신은 '나는 자연인이다.'처럼 산속에 움막을 짓고 야생의 삶을 사는 게 로망인 사람이니까요.


저는 마음을 나누는 친구들에게는 이렇게 이야기하곤 해요. 남편이 내 초자아( 超自我, superego) 같아. 이게 정상은 아니지요? 부부인데 어떻게 그런 관계가 설정되었는지는, 서로에게 필요한 혹은 모자란 부분의 퍼즐 조각이 그때, 맞춰졌을 뿐이라는 가설정도로 설명이 될지 모르겠어요.      


그렇게 늘 남편은 저를 가르치고 올바로 이끄는 사람으로(남편 생각), 저는 열심히 해도 반도 못 미치는 사람으로(제 생각) 자리 잡았습니다. 늘 싸움의 시작은 남편 때문에 했는데, 마지막은 저 때문에 모두가 어려운 시간을 보낸 것이 되곤 했습니다. 저만 참으면 되는데,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뭘 이런 것 갖고... 그렇게 저는 계속 반푼이가 되어갔습니다.      


그렇지요. 제가 처음부터 중심을 잡고 나갔으면, 아무 문제가 없을 일이지요. 하지만 중심, 그게 없었단 말입니다. 선생님 중심 갖기가 그리 쉬운 일인가요? 변명 같지만, 살면서 세워가는 것 아닌가요?      


'중심'있는 에피소드를 하나 알고 있습니다. 어느 여교수가 남편과 싸우던 중, 남편이 재떨이를 던졌다고 합니다. 맞았냐 안 맞았냐를 떠나, 재떨이는 여교수 즉 부인을 겨냥한 것이었으니까요. 그날로 여교수는 이혼을 결심하고 실행했다고 합니다. 이 이야기를 20여 년 전인가 들었는데, 계속 뇌리에 남아, 제가 제 발로 초자아에게 백기 투항을 할 때면 생각나곤 했습니다. 선생님 이게 중심 있는 거지요? 자기중심이요. 아. 저는 그게 없었고, 지금도 없습니다.


‘귀신’ 이야기하다가 뜬금없이 ‘중심’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말하자면, 제가 실체 없는 귀신을 무서워하는 것 또한 중심이 없어서입니다. 책을 읽고 공부를 하면 뭘 합니까? 그 많은 책들이 그저 읽기 연습정도로 그쳤나 봅니다. 실제로 좀 더 나은 사람이 되지 못했으니까요.      


그러고 보니 초자아도 한편으로는 귀신이네요. 이 또한 실체가 없는 것을 부여잡고 있는 것이니까요. 살풀이를 해야 하나, 신내림을 받아야 하나 혹은 돌아가신 어머니가 강요했던 교회를 가야 하나? 神은 神으로 해결해야 할 듯해서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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