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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Nov 04. 2023

耳順, 그리고 심리상담

11월 3일  세 번째 상담

선생님 상담을 받고 오는 길에 생각해 보았습니다. 내 삶의 문제는 무엇일까? 왜 나는 지금, 이 모습인가?      


다음 날인 오늘(4일), 정지아의 「빨치산의 딸」을 읽다가, 하똘이와 산책을 다녀온 후, 점심으로 라면과 맥주를 마시다 문득 떠올랐습니다. 依存(다른 것에 의지하여 존재함, 네이버국어사전).   참 우습지요. 남들보다 독립적이고 모험적이라는 수사가 늘 붙은 제가 ’ 의존‘이라니요? 이런, 맥주를 마시다 목이 메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그래도 치어스.      


제 메일의 아이디는 언니입니다. 제가 언니로 불리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늘 언니여서, 메일을 만들며 제가 가장 많이 쓰는 단어를 아이디로 한 것입니다. 마을 여성 모임에서 제가 의례 한 언니, 조 언니라며 불러대니 어떤 언니가 다방 같군. 하던 에피소드가 떠오릅니다. 아.... 그 가벼운 아이디에 제 정체성이 담겨있었다니...


이 또한 남편과 대척점의 성향입니다. 남편은 위 사람과의 관계를 어려워합니다. 늘 자신이 NO. 1 이어야 하는 유형이고, 저는 동생들 보다는 언니들과 있는 게 편한 사람이구요.      


그러고 보니, 제가 일했던 직장에서도 저에겐 모두가 '언니‘였습니다. 명색이 원장이라는 사람이 직원들을 언니로 대하니, 저는 꽤 민주적이고 깨어있는 사람으로 보였을 듯합니다. 저의 그런 행동은 제 삶의 패턴이었는데 말입니다.      


이 지역에 와서 만난 친구가 어느 날 제게 이렇게 말하더군요. ” **씨는 공주처럼 살 줄 알았는데, 하녀로 사네." 당시엔 아직 희생, 봉사란 허상이 남아, 살짝 기분 나빠도 넘길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그 친구가 제 삶을 통찰한 것이지요.      


선생님은 누가 그렇게 하라고 했나요? 하고 제게 물으셨지요? 아니요. 그냥 알아서, 이 문화에서 괜찮은 사람으로, 살아남기 위해 제가 했습니다. 그렇게 30여 년을 살고 보니, 저는 어느새 불행한 사람이 되어있었습니다. 그냥 모른 척,  가면을 더 단단히 쓰고 더 알아서 할 걸 그랬어요. 선생님. 엉 엉.      


하지만 저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나의 불편함을 넘어 주변 여성들이 그리하는 것도 불편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양측 부모님 돌아가시고 명절 아침 가족모임하던 것을 멈추게 했어요. 음식을 장만하던 큰 올케는 누군가 그 말을 하길 바랬던 것처럼 받아들였고, 이어서 시댁의 형님도 한 번의 물림도 없이 명절 아침상 제도는 없는 것으로 되었습니다. (그게 고스란히 제 몫으로 올 줄도 모르고서 말입니다.)     


그렇게 살며, 제가 또한 그렇게 의존적인지 몰랐습니다. 남편이 그렇게 함부로 할 수 있었던 것은 제가 그에게 依存했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그러지 않으려고 왔습니다.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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