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 Nov 21. 2023

耳順, 그리고 심리상담

11월 21일  오늘은 *이 태어난 날이다.

*이 꿈을 꾸었다. 꿈에서는 오늘인가, 내일이 생일인데, *이가 (집인지 혹은 내가 기다리는 어느 곳인지) 오지 않는다. 아마 일을 하기 때문이겠지, 하고 생각했는데, 아닌 듯하다. 첫째와 셋째는 무언가를 아는 듯하다. 사실은 휴가를 받았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한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남편은 어땠는지 모른다.)   생일을 맞아 나에게 오고, 안 오고를 떠나서 그런 계획을 자매들과는 공유하고 나는 몰랐다는 상황이 서운하다. 꿈에서 이 방, 저 방을 옮겨 다닌 듯한데, 어렴풋한 기억이다.      

지난 추석에 딸들과 의견 충돌이 있었다. 나는 내 부모 성묘를 하겠다며, 시댁 산소에 가지 않았다. 내 부모 역시 ‘나는 그곳에 있지 않아요. 죽었다고 생각 말아요.’라는 천 개의 바람이 되어라는 가사에서와 같이 그곳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앎에도 불구하고 남편, 그의 형제들과 마주하기 불편해 핑계를 대고 나섰다. 딸들은 친조부모 성묘를 하고 같이 가자고 했지만, 내 목적에 전혀 맞지 않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남편의 성씨를 가진 이들은 이쪽으로. 최 씨 성을 가진 나는 저쪽으로 각기 성묘를 하러 갔다.      


아버지가 좋아하셨던 술과 어머니가 좋아하셨던 멜론 등등을 놓고 몇 번 절도하고 음복도 하며, 나름 성묘를 하고 시간을 좀 더 끌 겸 커피숍도 들려, 남편 형제들이 돌아간 시간이 된 듯하여 집으로 왔다.      


이건 오로지 내 생각, 내 바램이었다. 엄마인 내가 그리 쓸쓸히(?) 성묘를 갔는데, 집에서는 성묘를 마치고 큰 집 식구들과 마당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으며 나름 보름달처럼 넉넉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다. 뭐 그럴 수도 있지 혹은 딸들 착하네 등등 의견이 나올 수 있기는 하다. (시골에 사는 내 지인들은 대부분 이런 반응을 했다.)     


그런데 나는 딸들에게 화가 났다. 부모님 근방에서 농사를 지으며 산다는 이유로 둘째인데도 불구하고 이런저런 대소사를 해야 했고, 아버님 돌아가신 후에 어머님과 살기도 했는데, 결과는 내가 부모님과 살던 집을 큰 아들에게 물려주었다.(당신들의 제사를 큰 아들이 지내주리라는 확신으로) 하지만 엄밀히 따지면 어머님의 바램과 달리, 타지에서 직장을 다니는 큰 아들은 그 집에서 제사는커녕, 조카인 내 큰 딸에게 임대료를 받으며 내가 살던 집을 빌려주고 있다.(지금까지 5-6 년간 계속 진행 중)      


큰 딸이 농사를 지으니, 농지에 대해선 임대료를 받고 빌려주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농지에 딸린 시골집의 임대료까지 받다니... 남 보다 못하다는 게 이런 것일 듯.... 차리리 남이면 그러려니 하지.


난 앙금이 쌓였는데, 남편은 이 말이 거론되면, 내가 자기 집안의 우애를 헤집어 놓는  원흉이라도 되는 것처럼 달려든다. 그리곤 이렇게 말한다. 그거 뭐 어렵다고, 명절 때 숟가락 몇 개만 더 놓으면 되지. 남편은 내가 이건 아닌데? 하는 의문과 딸의 ‘엄마, 나 그까짓 것 낼 수 있어. 큰 아빠 소탐대실일걸.’하는 자조를 싹 무시하고 역시 자기 ‘쪽’을 지키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이때부터 입 맛이 싹 가셨다. 그래. 난 둘째지, 그만큼 하면 되었어. 그래서 설과 추석에 큰 집까지 가서 아침 상을 받고, 오고 가기를 몇 년. 재혼해서 들어온 집에서 무슨 고생인가 싶어, 형님 이제 아침 각자 먹고 만나지요.라고 제안했고 그렇게 각자 아침을 먹고 성묘를 하고 식당으로 가던지, 각자의 길로 갔는데... 다른 누구도 아닌 딸들이, 내가 살아온 바를 모르나? 싶게, 추석 성묘 후, 나와 상의도 않고 가족들 상을 떠억 차려 대접하였단다.      


난 딸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너희들 앞으로 계속 이렇게 차릴 거야? 나랑 상의도 안 하고. 계속 우리 집에서 이렇게 하는 것으로 길 닦았으니, 그리해야겠네. 그럼 나는 뭐니? 이 집 하녀니? 내가 이런 상황을 얼마나 걱정하며 살금살금 살아왔는데, 너희들이 하루아침에 확 뒤집어 버리니? 그리곤 큰 딸을 향해 폭탄을 던졌다. 너 어디 가서 페미니스트란 단어 입에 담지도 마!     


가끔 이 입이 문제다. 참지 못하고 쏟아져 나오는 악담을 주체 못 하는 결과는 참 쓸쓸하다.

지금처럼. 오늘 꿈처럼...

작가의 이전글 耳順, 그리고 심리상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