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 Jan 21. 2024

딸들이 온다.

2024년 1월 21일

급박하게 진행된 부모의 別居가 성인이 된 딸들에겐 어떤 영향이 있었을까? 그동안 나는 나만의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었다. 얼마 전 읽은 공지영 씨의 글에서 「고통의 권력화」란 말이 나오는데, 나는 딱 그런 상황이었다. 내 고통의 상처가 가장 깊고, 처절해. 그러니, 다른 이들은 내게 어떤 지적도 하면 안 돼. 단지 같이 슬퍼하고 분노해야 해. 그래야 친구고, 가족이지. 그러면서 선을 딱 그어버렸다.      


제주에 온 지 한 달이 지나고야 연락을 주고받았고, 두 달 만에 딸들이 각자의 일정에 맞게 왔다. 동물을 좋아하는 딸들은 아무런 조건 없이 다가오는 하똘이에게, 또한 아무런 조건 없는 사랑을 쏟는다. 그래. 이게 바로 사랑이지. 사람은 가족이란 굴레로 그럴듯한 조건을 들이대니, 숨이 막히는 사랑이 되기도 한다. 그렇게 나는 딸들과 하똘이라는 「다정한」 동물 덕분에 다시 따뜻한 마음으로 만나게 되었다.      


이제 이십 대, 삼 심대 후반의 나이가 되는 두 딸들은 나름 고군분투하고 있었다. 경제활동을 가장 왕성하게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 이직과 결별을 하는 등 여러 변화를 겪으며...     


큰 딸은 시골집을 청소하며, 나도 가볍게 살고 싶어서 시골에 왔는데, 나만 이렇게 두고 다들 어디 간 거야? (특히 엄마와 하똘이는) 나는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마치 어린아이처럼 버림받은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둘째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니 큰 딸이 느꼈을 상실감보다는 좀 덜했을 테지만, 시골집의 큰 변화는 불안감을 느끼기에 충분한 정도였을 것이다.      


큰 딸은 농사일에 단련되어서인지, 7시 반에 하는 하똘이 아침 산책을 늘 같이한다. 늦잠을 자도 되련만... 1시간을 다녀오고 나서 난 보조교사로 출근하면, 딸은 다시 하똘이를 데리고 2시간 넘게 산책을 하고. 힘들어하는 하똘이를 집에 데려다 놓고 다시 산책을 다녀왔다. 큰 누나랑 지낸 이틀간의 긴 산책으로 하똘이는 힘들었는지, 변비가 생기기도 했다. 그렇게 큰 딸은 놀러 와서도 하염없이 산책을 다녔고, 미술관 관람을 하기도 했다. 쉬지 못하는, 쉬면 불안한 딸이 그렇게 일해서 번 돈을 봉투에 넣어 건네며, “엄마. 따뜻하게 지내.”라고 한다. 전생에 네가 내 엄마였나 보다. 나는 돈 봉투를 고맙게 받는다. 지난 꿈에서 3,750,000원을 받았는데, 벌써 3,200,000원이다. 나머지 550,000원은 물품 스폰으로 환산해야 하나?, 조금 더 기다려볼까? 마음속으로 견주고 있다.     

 

둘째는 유치원, 어린이집 교사 총 3년 생활을 접기로 했다. 2월 말에 퇴직을 하고, 공항검색요원으로 지원해보겠다고 한다. 왜? 멋지잖아. 난 그 일 하는 사람들 멋지더라. 글쿤. 그런데 엄마 이런 생각도 했어. 나 1년만 더 어린이집 다니면, 주변에 흔들리지 않고 내 일만 하면서, 마음을 그리 쓰지 않고도 쭈욱 할 수 있을 것 같았어. 그래서 덜컥 겁이 나기도 했어. 그냥 있으면 편하게 이 일을 할 텐데, 다시 뭔가를 시작해야 하는 걱정과 그렇게 좋은 기술을 가진 교사가 되어, 내가 되고 싶지 않은 교사가 어느새 되어 버리는 것 말이야. 그래서 지금 그만두는 게 잘한 것 같아. 그래 잘했어. 너 이제부터 뭐든 시작할 수 있어.


나만 어려운 게 아니었네. 위안을 받아야 하나? 죄책감을 느껴야 하나? 이젠 위안도 죄책감도 내게 멀어진 느낌이 되었고, 그저 시지프스처럼 저마다 돌덩이를 짊어지고 언덕을 오르는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젠 모두 어른이고, 제 삶의 몫을 살아내야 하니 各自圖生하자, 돌아보니, 나만 잘 살면 되는 일일 듯....      

작가의 이전글 한번 사용했던 반찬을 다시 사용하는 느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