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Rumi Jan 24. 2024

아.... 엄마다.

2024년 1월 23일

엄마는 탁자를 앞에 두고 의자에 앉아 있다. 나와 마주 앉아 차와 케이크를 먹고 있다. 그런데 나는 엄마의 뒷모습만 보인다. 70대 정도 되었을까? 짧고 검은 파마머리를 하고 의자에 꽃꽂이 앉아있는 뒷모습은 지금 생각하면, 낯선 모습인데 꿈에서의 나는 ‘엄마’라고 단정한다. 엄마는 창밖을 보며 있고, 나는 엄마를 마주 보고 있는데, 그런 ‘우리’를 또 다른 내가 엄마 등 뒤에서 바라보고 있다. 엄마는 차분히 나와 대화를 나누다가, 차를 엎지르기도 케이크를 마구 흘리기도 한다. 나는 그런 엄마를 보며, 치매기가 왔다 갔다 하는 거라고 생각한다. 아, 이러한 상황을 치매나 조현병 혹은 조울증 등의 이름으로 엮어 일반화시키는 것은 얼마나 쉽고, 짐을 덜 수 있는지....      


여성의 자아와 주도성 관련 연구모임에서 친밀한 관계에서 거절해 본 경험을 떠올리면서, 내 인생에 단연 거절을 가장 많이 한 대상으로 ‘엄마’가 떠올랐다. ‘엄마. 제발 그만 좀 해.’ ‘엄마. 알았다고. 그만하자.’  ‘엄마. 끊어. 나 바빠.’... 이 정도는 그래도 상호작용 중의 거절이다. 대부분은 아예 마음에서 엄마를 거절하고 있었다. 전화를 걸지도 받지도 않거나, 엄마가 제발 그냥, 아빠가 원하는 밥이나 차려주면서, 조용히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 바로 나였다.


그리고 보니 나는 엄마와 꿈에서처럼 평화롭게 앉아 차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거나, 모녀가 단출히 여행을 다녀온 기억이 없다, 뭐가 그리 바빴을까? 살기 어려웠을까?   그런데, 오늘. 엄마와 나는 그런 단출하고 평안한 자리에 마주 앉았다. 마주 앉은 나는 엄마와 대화를 나누다, 엄마가 흘린 차와 음식을 치우고, 엄마 등 뒤에서 있는 나는 그런 '우리'를 바라보고 있다.      


엄마는 좀처럼 내 꿈에 오지 않았다. 아마 엄마는 당신을 마음 깊이 거부한 딸에게까지 올 이유를 찾지 못했으리라. 재주 많고 똑똑했던, 엄마는 가부장제 사회와 딸에게 거부되고 차츰 빛을 잃어갔다. 그리고 얼마 전, 나는 환갑이 지나서야 엉망진창의 세상에서 무언가를 말하려던 엄마를, 지금의 내 모습으로 만났다. 오래전 돌아가신 엄마에게 용서를 구했고, 그리고 엄마가 왔다.      


토닥토닥 아이들을 재우는 시간. 언니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 번호 네 계좌 맞아? 응. 왜? 네가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고 해서 말이야. 조금 입금할게. 안 돼. 3,750,000원 맞춰야 해. 그러니까 니 꿈은 개꿈이라고. 그리고 3,750,000원이 뭐냐? 그래도 꿈인데.. 3,750,000,000원은 돼야지.      


아, 그렇게 내 오컬트의 세계를 짜 맞추려던 첫 꿈은 깨졌지만, 엄마가 꿈에 오고 언니가 용돈을 보낸 것을 빌미로 다시 나만의 두 번째 오컬트 조작에 들어가려 한다. 아, 엄마가 꿈에 온 이유가 바로 이것이로군.

작가의 이전글 딸들이 온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