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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Jan 27. 2024

잠이 문제가 아니다.

항우울제의 효과

요즈음의 나는 4시간의 직장생활과 하똘이 산책으로 하루에 12,000보 정도를 걷는다. 하루를 마무리하며 약을 먹으면, 어느새 감기는 눈꺼풀. 이 정도면 약을 안 먹어도 되겠어. 그리곤 목요일부터 약을 먹지 않았다. 곧 주말이니, 시도해 볼만했다.      


목요일. 잠은 들었지만 새벽 3시쯤 깨어, 결국 이 정도에서 잠은 마무리지었다. 나쁘지 않은 출발이다. 이전에 시도했을 때는 잠이 안 들어 고생을 했지만, 일단 잠이 들었다는 게 큰 성과라면 성과였다.   

   

금요일. 새벽에 잠을 설쳤겠다, 직장도 다녀왔겠다, 이틀째 시도에 들어갔다. 9시가 넘자 눈꺼풀이 내려온다. 그래 됐어. 나는 여느 때처럼 잠이 들었다. 그런데 이번에 느낀 것은 잠이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는 어느 공동체 시설 같은 곳에 있고, 두려움에 떨고 있다. 그들은 이 시설에 있는 사람들을 매일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고 있었고, 나는 언제 내 차례가 될지 모르는 상황이다. 사람들은 무작위로 죽임을 당하는데, 그들은 커다란 펜치 같은 것으로 사람들의 갈비뼈를 박살 내는 방법을 사용한다. 내 친구도 그들에게 죽었는데, 친구는 그들의 실수로 두 번을 그런 고통을 당해야 했다. 친구는 담담히 ‘할 수 없지.’ 그러면서 죽어 갔다.


그곳을 빠져나와 양 옆이 낮은 산이고 실개천이 흐르는 곳으로 도망가다가, 오토바이를 타고 쫓아오는 사람에게 다시 잡혀왔다. 나는 사람들이 고통을 받으며 죽어가고, 친구 또한 그렇게 죽는 것을 보며, 너무 두려워 나를 빨리 죽여줬으면 하고 기도한다. 그리곤 생각한다. 죽음이 이렇게 두려운 것인가? 어떻게 그 길을 갈 수 있을까?      


나는 커다란 황금빛 십자가가 삐딱하게 스테인드글라스가 되어있는, 어른 키 만한 동그란 통창을 지나 어두운 복도를 그들(보스와 2인자)의 뒤를 따라가고 있다. 나는 그들과 어느 방에 들어갔다. 그 방에는 보스의 부인이 있었다. 나는 속으로 저런 사람과 어떻게 살 수 있지? 어떻게 저 여자는 여태 살아남았을까? 등등의 생각을 한다. 보스는 방의 안쪽 중앙에 앉았고, 2인자는 그의 왼쪽 좀 아래, 부인은 문 앞에 있는 나처럼 보스의 맞은편에 거리를 두고 있다. 보스와 2인자는 무언가를 먹으며 낄낄대고, 부인은 보스의 상의 티셔츠를 바닥에 펼쳐놓고, ‘길이가 너무 길어서 옷을 잘라야겠어요.’하더니 가위로 티셔츠의 아랫부분을 자른다. 보스는 예의 그 서늘한 인상을 지으며 그저 무심하게 보는 듯하더니, 이내 단검을 날려 부인의 안구를 관통시킨다. 그녀는 피를 뿜으며 그대로 뒤로 고꾸라진다. 나는 두려움에 숨이 멎을 것 같다.  

    

심장의 격렬한 운동과 두려움에 몸서리치며 잠에서 깬다. 죽임을 당하며 고통과 두려움에 휩싸인 사람들의 눈이 떠오른다. 평소엔 아무렇지도 않게 죽음을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죽음이 두려운 것일 줄이야. 심장이 너무 심하게 뛴다. 그리고 보니 문제는 수면제가 아니었다. 나는 그동안 항우울제의 놀라운 기능을 간과했던 것이다.      


그동안 영문도 모른 채, 꼭꼭 숨겨져야 했던 ‘내 안의 두려움’이 내지르는 아우성이 안타까워 눈물이 난다. 너를 까맣게 잊어버리고 잠을 자려고만 했으니, 너는 얼마나 두렵고, 서글펐을까? 이렇게 너를 술이나 약으로 계속 처박아 두어야 하는 것일까? 혹은 종교의 힘을 빌어 마귀를 쫓듯 쫓아버리고, 위안과 안식을 얻어야 하는 것일까?


꿈에서의 두려움이 진정되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 내 옆에 있는 다정한 생명체 덕분에 약을 먹지 않고, 두려움과 만날 용기를 낸다. 삶에는 행복도 두려움도, 기쁨도 슬픔도 모두 ‘나’라는 것을 인정하는 그런 시간이 필요하고, 그 시간이 바로 '지금'이라 느낀다. 내 뒤척임에 고개를 바짝 들고 쳐다보는 신뢰로 가득한 눈 빛에 다시 잠을 청한다.      

                                                                                                                                                                  Ru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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