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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Feb 03. 2024

돈. 돈. 돈.

2024. 2. 3.

지난 12월 중순 경, 11월 달의 가스 난방비청구서를 보고 깜짝 놀란다. 11월 13일 밤 8시쯤, 제주의 임대한 집에 들어왔으니 17일분의 난방, 온수 요금이 무려 83,600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이 금액에 덜컹 내려앉는 심장이 내게 있다는 것이다.      


인생 전반기. 부모님과 살 때는 부모님에게, 중반기 결혼을 해서는 남편에게 전적으로 경제를 의지하였다. 결혼생활 중에는 대부분 직장을 다녔음에도, 후반기에 접어든 지금의 경제관념을 되짚어 보면, 상당 부분 책임 전가를 하고 있었지 싶다. 예를 들면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면서도 어디든 끈 없는 신발로 계산대로 달려갔으며, 어떤 상황이 생기면 솔선수범하여 모금을 하는 등 내 통장사정을 돌보지 않고도 가능한 삶이었고, 늘 어찌어찌 그러한 삶의 패턴을 고수하며 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퍽이나 넉넉한 가정환경은 아니었다. 아버지는 국가공무원신분의 교수였고, 첫째와 막내가 겨우 5살 차이밖에 나지 않아, 연달아 대학을 들어가는 4남매의 등록금을 2년간이나 내면서 빠듯한 생활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난 절대 할 수 없는 일일 듯하다. 이후 남편 또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자수성가한 농민이었으니, 돌이켜 생각해 보면 내가 그 정도의 여유를 부릴 수 있었던 것은 많은 부분 책임을 외면했기 때문이다.   

바다를 좋아하는 나는, 제주에 오며 서핑을 하는 꿈을 품었다. 마침 근방에 서핑의 성지가 있어, 날이 풀리면 해야지 하고 마음먹고 있던 참. 하지만 웬걸? 과연 내가 그런 여유를 부릴 수 있을까? 부려도 되나? 하며, 계산기를 두드린다. 얼마 전, 속도위반을 한 것 같은데, 딱지가 날아오면 어쩌지? 친구야 지난번 내가 준 그 온열기, 안 쓰면 가져와주라. 딸아 너희들 안 입는 옷 가려오렴. 엄마는 아이들과 지내니 편한 옷이면 괜찮아. 버리지 말고... 가스비에 이은 관리비, 인터넷 요금 그리고 카드값 등등. 이제는 오롯이 나에게 달려들었고, 나는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처음엔 왜 이리 구질구질하지?라고 생각했지만, 인생 총량의 법칙을 지켜, 이제부턴 잘 그리고 많이 써야 할 듯하다.      


그렇게 보니, 내 삶의 문제는 경제관념뿐만은 아닌 듯하다. 대부분이 학교생활이었던 인생 전반은 부모님과 남매들 덕분에 어렵지 않게 학교생활을 했고, 실력에 비해 좋은 대학도 갈 수 있었다. 결혼을 하고 인생 중반으로 접어들며 30대 초반에 어린이집 원장이 되고, 학사 학위만으로 대학 강사를 하는 등 행운이 따랐지만, 얼마 전까지도 이러한 일들에 감사함보다는 일어날 것이 일어난 것이라고 생각한 듯하다.(쪽 팔려서 얼버무린다.)      


너무 일찍 운을 써버린 걸까? 인생 후반으로 접어든 지금, 나는 어린이집 보조교사를 하며, 연세를 내고 임대한 작은 빌라에서 생활비를 아끼며 살고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편안하고 행복하다. 늘 바다를 보며 하똘이와 산책하고, 주 20시간 어린이들과 놀며 음악을 듣고 잘 못 쓰는 글을 쓰기도 한다.      


그리고 느낀다. 삶에 당연한 것은 없다고... 당연시했던 모든 시간, 상황 그리고 나와의 인연으로 함께 한 모든 이들에게 고맙다는 인사와 미안한 사과의 마음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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