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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Feb 10. 2024

'색채의 여행자들'이라더니...

어지간하지 않은 전시회(2024. 2. 9)

물 정원을 가로지르면 노출 콘크리트로 외장을 한  아담한 건물이 있다. 바로 여기, 제주도립미술관에서 앙리 마티스, 라울 뒤피의 ‘색채의 여행자들’ 전시회가 열린다. 라울 뒤피는 생소하지만, 마티스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여기던 차, 도민이면 50% 할인한다기에, 도민증을 받고 설연휴 첫날을 전시 제목처럼 ‘색채의 여행자들’과 함께하러 왔다.      


아. 좋다. 명절연휴를 이렇게 보내다니~. 그동안은 왜 그리 동동거리고 의무감에 휘둘리며 지냈을까? 룰루랄라. 그러나 1층의 라울 뒤피 전시관에 들어서며, 나의 희망찬 마음은 ‘이게 뭐지?’ 하는 물음으로 삐딱해지기 시작한다.


도립미술관의 꽉 막히고 어두운 구조와 다닥다닥 붙은 전구색 조명은 뒤피의 작품에 노란 코팅을 하고 있었다. 더하여 녹색을 많이 사용한 뒤피의 작품을 온통 같은 계열의 녹색벽면에 걸었고, 그림뿐 아니라 일러스트, 직물 그리고 그가 디자인한 직물을 이용한 드레스의 전시까지 천편일률적인 조명과 어두컴컴한 배경에 있어 그의 대담하고 멋진 색의 향연을 제대로 느낄 수가 없다.


나의 ’왜?‘ 본능이 불끈 일어난다. 나라도 의견을 내야 하나? 그나마 50% 할인을 받고 왔고, 그동안은 가사노동에 며칠을 할애해야 했던 명절을 오롯이 나를 위해 쓸 수 있다는 행복감으로 마음에 여백이 생겨, 일단 숨도 고를 겸 카페로 간다.  한참을 통창너머 물 정원을  바라본다. 그래 바로 이게 색채의 여행이지...


1층의 녹색 배경이 혹시 원래 벽면을 이용한 것인가? 하는 여지를 두었으나, 2층의 마티스 전시관에 들어서자마자 기획임을 알아차린다. 마티스 하면 떠오르는 색인 파란색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다. 파란 벽면 위에 파란 마티스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다. 그나마 마티스 작품은 2층에 전시되어, 어느 정도 기대를 놓게 되었다. 그래서 마티스를 2층에 배치했나? 하는 이상한 상상도 하며, 이러한 전시 기획이 배려인지 방해인지에 대해, 나의 느낌은 '방해‘라고 주저 없는 답을 한다.       

 가능하면 자연 채광과 과학적 조명으로 작품의 본래 모습을 마주하도록 한, 지난여름 다녀온 미국의 박물관과 미술관에 너무 젖어 있었나? 2016년에 다녀온 영국의 갤러리에서도 가능한 예술작품이 잘 드러날 수 있도록 색채에 영향을 덜 끼치는 조명과 배경을 사용하는 등 배려했었는데... 2024년 오늘, 나는 어두컴컴한 전시실에 온통 노란빛으로 코팅된 마티스와 뒤피의 작품을 보며 관람자로서의 권리가 침해당했다는 느낌을 받는다.

  

나오는 길에 키오스크 설문조사에 참여해서 의견을 남겼지만, 의견이 수렴이 되기는 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나야 도민 할인으로 들어가서 한나절을 예술 작품과 함께 보냈으니, 이 정도 툴툴거림으로 되었지만, 혹 다른 관람자들은 어떤 느낌이었을지? 궁금하던 차. 도립미술관 자유게시판을 보니 전시회 조명 관련 의견이 들어와 있다. 나만 그런 게 아니었군. 여기에 힘 받아 이번 전시회에 대한 의견을 올린다.


우리가 쓰는 말 중에 '어지간하다'라는 말은 '정도나 형편이 기준에 크게 벗어나지 아니하다.'(네이버 사전)라는 의미로 통용된다. 나도 어지간하지 않은 성격이지만, 관람자로서 전시회가 어지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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