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자 길들이기(2024. 2. 15)
현관문이 있는 거실과 방 하나가 딸린 마당 있는 집이다. 어디를 다녀오는데, 사자 한 마리가 뒤에서 쫓아온다. 현관문을 닫을 새도 없이 집 안으로 뛰어가니 사자도 거실에 들어섰다. 완연한 사자의 모습이라 무서웠지만, 한 편으로는 15킬로 정도밖에 안 되어 ‘참 예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조금 후 한 마리가 더 뛰어 들어와 이번에는 방 안으로 들어오려 한다. 나는 방으로 들어가 얼른 문을 닫았다.
나는 지난 1월 어린이집 생활로 다시 돌아가며, 세 가지 다짐을 했다. 하나, 아이들을 진단하지 않는다. 하나, 아이들과 겨루지 않는다. 하나, 아이들에게 협박하지 않는다.
긴 설 연휴를 마치고 보조교사로 돌아간 나는, 어제 유독 허리가 아파왔다. 허벅지 뒤쪽이 당기기도 한다. 아, 의지와 상관없이 몸이 고장 나면 아무것도 할 수 없을 텐데... 그러고 보니, 요 며칠 아이들과 겨루고 있었다.
스스로는 훈육이라지만, 조금 떨어져 보면 영락없는 힘겨루기다. 어린아이들과 겨루다니? 좀, 아니 많이 유치하지만, 어느새 보육현장에 익숙해지면 위의 다짐이 무색해지기 쉽다. 요즘 며칠 내가 그러고 있으니, 내 허리가 아플 수밖에... 그나마 몸으로 반응이 오는 나이가 되어 겸손해질 수 있으니 다행이다. 한창일 때는 이처럼 아이들과의 겨루기에서 승기를 잡는 게, 교사의 능력인 줄 알았으니 말이다.
H는 나이 또래에 비해 성숙한 편이다. 조곤조곤 이야기하면 대화가 되는 만큼의 성숙도라는 게, 어느 때는 자기 고집을 밀어붙이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이 경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는 신념 있는 경우나, 일에 치여 힘에 부치는 경우 교사들은 아주 어린아이들과도 이 경계를 두고 겨루게 된다. 한 번은 짚고 넘어가야지. 그래 지금이야. 이 또한 아주 주관적인 판단 혹은 당시의 기분이나 컨디션 등이 결정에 한 몫한다. H는 아침부터 기분이 좋지 않다고 한다. 뭐야? 네 기분 안 좋으면 아무렇게나 해도 되나? 그리고 그 기분은 시도 때도 없이 안 좋잖아. 등등 나는 오늘 종잡을 수 없는 H의 기분과 겨루겠다고, 결정을 내린다. 드디어 점심 먹기 전에 손을 닦지 않겠다고 발버둥을 치는 H를 번쩍 들어 올려, 다른 보조교사와 협업하여 손을 닦인다. H는 강압으로 닦인 손을 입에 넣으며 울어댄다.
D는 다른 활동으로의 전이가 어려운 아이다. 자유놀이 후 간식을 먹기 위해 놀잇감을 정리한다던가, 손을 닦는 다던가, 심지어는 집에 가기 위해 차를 타야 할 시간에도 일단 싫다며 때를 쓰고 한바탕 난리를 친 후 한다. 나는 늘 D를 보며, 얼마나 어려울까? 이제 학기 말인데, 아직도 일과리듬을 타지 못하다니... 등등의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하필 H와 같은 날, D와도 겨루게 되었다. 친구를 때리고, 뭐든 안 한다고 일단 하는 D가 차를 탄다고 현관까지 나왔다가, 신발을 안 신는다며 떼를 쓴다. 나의 몸은 다시 D에게 달려들어 온몸을 뒤트는 아이를 번쩍 안아 신발장으로 옮겨 신을 신긴다. 결국 D는 눈물로 범벅이 된 얼굴로 노란 차에 태워진다.
집으로 돌아와 하똘이와 산책을 하며, 아파 오는 허리를 두드리며 생각한다. 손을 좀 안 닦을 수도 있지, 그게 뭐 그리 중요하다고 내 다짐을 잊고 H와 겨루려 했을까? D에게 해님 보러 나가자고 했으면, 호기심 많은 D는 울지 않고 신을 신었을 텐데... 뭐가 그리 바쁘다고, 아이를 강제로 그리했을까? 참 이 나이에 고작 만 2세 아이들과 겨루다니. 돌아보니, 내가 아이들을 안아 올린 이유가 예뻐서라기보다는 무언가 통제하고 하게 하려는 의도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아파도 싸다. 싸.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어른이 되었고, 어쩌면 우리도 한 때 어린아이였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는 지도 모른다. 이 일을 배웠고, 내 생에 많은 시간을 보냈으니 잘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는데, 어느새 나는 다시 아이들에게 그저 '또 하나의 어른'으로 군림하려 한다. 그나마 몸이 신호를 보내서 멈추기는 했지만, 제발 이렇게 하지는 말아야 할 텐데… 다짐을 한다.
눈에 힘을 주고 경어를 사용하면서, ** 안 하는 친구는 &&& 못 해요. 예쁘게 안 앉는 친구는 ## 안 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