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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umi Mar 08. 2024

Bonjour Solitude

Bonjour Tristesse (Françoise Sagan)

친구가 올레 트레킹을 위해 왔고, 나와 함께 10박 11일 동안 숙식을 하게 되었다. 그동안 함께 트레킹을 하면 앞서서 숲길을 헤치며 없는 길도 만들었고, 먹고 자고 생활하는데 서로의 리듬이 맞았으므로 나는 주저 없이 친구를 집으로 오게 했다.      


엄마 잘됐다. 덜 외롭겠네. 그렇지. 나는 대답을 하며, 생각한다. 딸들이 내가 외로울까 봐 걱정하나? 딸들은 외로운 게 그다지 좋지 않다는 의미인가? 나를 위해 하는 말이지만, 나는 ‘외로움, 괜찮은데'라는 생각을 하며 ‘그렇지’하고 대답한다.      


친구는 열흘을 머물며, 올레를 9코스 돌고 털갈이를 하는 하똘이와 지내기 위해 돌돌이를 백번은 돌렸을 터이다. 올레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장을 봐서 자기가 먹고 싶다는 핑계를 대며 김치를 담고, 콩장을 만들고 밥을 차리고 설거지를 했다. 난방비를 아낀다며 보일러를 거의 때지 않는 방바닥에 얇은 요만 깔고 자도 괜찮다고 하던 친구는 나와 밥을 먹고 맥주와 막걸리를 마시고, 주말엔 함께 올레 트레킹을 한 일정을 마무리하고 아침 비행기를 타기 위해 새벽 6시에 버스를 타러 나갔다. ‘버스도 잘 다니는데, 뭐 하러 샘이 공항까지 왔다 갔다 해요.’      


친구는 내가 현관문을 나가지도 않고 그냥 집 안에서 잘 가라는 인사를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보다 나이가 어려도 언니 같은 친구다. 해가 뜨길 기다려 하똘이와 산책을 나가서야, 친구의 톡이 왔다. ‘쌤. 싱크대 두 번째 서랍 하얀 바구니밑에 마음만 가득 담은 편지 써놓고 왔어요. 덕분에 편하고 행복한 날들이었어요. 다시 보는 날까지 건강하셔요.’ (마음+α)


나는 친구가 가고 난 후, 드디어 내 자리에 앉는다. 친구에게 바다가 보이는 자리를 주느라, 그동안은 바다를 등지고 앉았다. 그리고 저만치 치워놓았던 노트북을 켜고 바다를 보며 글을 쓴다. 출근하기 전에 친구를 올레 시작코스에 내려주느라 서둘러 나갔던 아침 일과가 다시 여유를 찾는다. 음악을 듣고 세탁기를 돌리고, 책을 읽는다. 벌써 이러한 리듬이 나에게 편안함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외롭다. 하지만 외로움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그런 시간의 평안이 나를 감싼다.      


그동안 어찌 살았는지? 내가 생각해도 이상하다. 아이도 많이 낳았고, 직장에서, 시골집에서 늘 사람들에 둘러 쌓여 바삐 움직이며 살았다. 주방일엔 젬병인걸 감추기 위해  더 힘을 들였고 이는 짜증으로 들어 나기 일쑤였으니, 당연히 집에 손님이 오는 것도 명절도 싫었다. 나는 어려워 죽겠는데 남들은 그게 뭐가 어렵냐고 하니, 참 환장할 노릇이었다. 공동체 정서가 베인 시골에 얼마나 부적격 유형의 인간인가? 그래도 살아 보려 했는데, 결국 그러지 못했고 지금의 내가 된 것이다. 내가 더 참고 남들처럼 살았으면 적어도 아이들을 힘들게 하지는 않았을 텐데 하는 미안함이 없진 않지만, 이제야 나란 사람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위로하게 되는 그런 시간이기도 하다. 토닥토닥. 수고했어.    

  

프랑수아즈 사강의 소설 「슬픔이여 안녕」은 슬픔을 보내며 하는 ‘안녕~~’이 아닌, 슬픔을 맞이하면서 인사하는 것이다. 사춘기 시절, 슬픔을 맞이하는 주인공과 잠깐 동화되었지만 이제야 그 의미를 이해한다. 슬픔도 외로움도 ‘안녕'하며 맞이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나는 이제야 된 것이다.      


다시 딸들의 위안으로 돌아가면, 엄마는 덜 외로워서 좋은 게 아니라, 외로움을 그리워할 수 있어 좋은 것 같아. 너무 인위적이거나 불편하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시간 동안, 외로움을 기다리는 그런 시간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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