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수는 어디에?
- 김주혜, 다산북스, 2022년. 박소현 역
요즘 재미 한인 2, 3세들의 활약은 출판계에서도 두드러진다. 「파친코」의 이민지를 비롯해서, 「전쟁 같은 맛」의 그레이스 M. 조, 룰루 밀러의 과학 논픽션 에세이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존재하게 만든 「자연에 이름 붙이기」를 쓴 캐럴 계숙 윤 등이 있다. 이들은 한국인 2, 3세로 미국에서 활동하며 그들의 언어인 영어로 글을 쓰고, 한국어로 번역되어 우리에게 전해진다.
이 책 역시 한국인 2세 김주혜 작가가 영어로 쓴 책으로, 제목인 「작은 땅의 야수들」은 일본인 장교가 한국에 대해 표현한 작은 땅에서 거침없이 번성하던 야수를 가리키는 말로, 이는 한국의 영적인 힘을 상징한다.(한국 독자들에게 中) 작가는 함박눈 내리는 공원에서 조깅하던 중 사냥꾼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 사냥꾼 앞에 호랑이가 나타난 것에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1917년부터 1964년까지 46년 동안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에 이은 격동기를 배경으로 사냥꾼의 아들 남정호, 인력거꾼 한철, 기생 단이, 월향, 옥희, 연화 그리고 공산당 활동을 했던 이명보와 그의 친구인 대지주의 아들 김성수. 굶어 죽고, 맞아 죽고, 저마다의 명분으로 싸우다 죽으며, 슬픔과 한이 맺힌 이들이 위의 인물들을 엄호하며 이야기는 전개된다.
작가는 독립운동을 도왔던 외할아버지의 이야기와 많은 자료를 바탕으로 6년에 걸쳐 이 책을 집필했다고 한다. 기생, 막노동꾼, 독립운동가, 친일파 그리고 일본인 등을 통해 입체적인 인물 묘사로 젊은 한국인 2세가 상상하기 어려운 바를 소설화한 것이다. 하지만 보다 깊은 절망과 고통에 대한 침잠을 통한 진정한 야수로의 면모를 드러내는 노력보다 인연과 운을 통해 삶이 건져지는 장치를 자주 사용함으로써(정호의 담뱃갑, 예기치 못한 한철의 상속, 이토가 연화에게 남긴 돈 그리고 연화가 전복에서 발견한 진주 등) 야수들의 영적인 힘이 축소되는 전개와 결말에 아쉬움이 남는다.
한편으로는 이게 바로 문화적 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87년생이며, 9살에 미국으로 이주하여 미국시민으로 살아온 작가에게 더 이상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외국 그것도 미국이라는 세계 최강국에서 보기에 작가가 그린 삶을 살아낸 이들 정도면 ‘야수’라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인식의 차이 말이다. 하지만 내가 동경하는 한국의 야수들은 더욱 깊은 울림을 주는 삶을 살았음을 느끼기에,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수여했고 유명 작가가 추천한 600여 페이지에 달하는 긴 글을 읽고도 허(虛)하다.
첫 장편「이름 없는 여자의 여덟 가지 인생」을 영문으로 낸 이미리내의 경우 한국에서 고등학교까지 나온 거의 토종 한국인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전 세계 공용어인 영어로 글을 쓰고 한국보다 큰 시장을 기반으로 출판했으며, 해외 유명 문학상을 수상했다는 것이다. 이는 문학적 기반과 함께 언어 권력과 마케팅 전략이 출판계에 큰 영향력을 발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이제 출판계도 세계화되며, 한국 작가의 작품을 역번역(易飜譯)하여 읽게 되는 시간이 다가오는 것에 대한 우려가 기우(杞憂)가 아니었음을 느낀다. 그래도 내 생(生)에 노벨 문학상 작가의 작품을 모국어로 읽을 수 있다는 축복을 위안으로 삼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