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니와 브리사의 추억>

by 성대진


전두환 신군부는 5.18 원죄를 희석하고자 필사적으로 서울올림픽의 유치에 매진했고, 마침내 성공하면서 세계에 존재감을 과시했습니다. 그 서울올림픽 유치의 주역이 바로 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주입니다. 현대그룹이라는 대제국을 완성한 사람답게 정주영 창업주는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라는 외형적 사실을 뒤집는 예리한 경영판단력과 안목이 발군이었습니다. 어눌한 말 속에는 비상한 두뇌를 단박에 느낄 수 있는 비범한 멘트가 담겨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경부고속도로, 그리고 중동신화의 주역으로 박정희 시대부터 이미 명성을 날렸지만, 정주영이라는 이름이 본격적으로 전 국민의 각광을 받은 것은 전두환 정부 시절의 서울올림픽 유치였습니다.


올림픽 유치의 공로를 치하하는 차원인지 당시 정주영 창업주는 이례적으로 KBS에서 대학생 등을 주축으로 한 국민과의 대담 프로그램에 출연했습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올드보이라면 어렴풋이 그 대담이 기억이 날 것입니다. 아무튼 대담에서 정주영 창업주는 올림픽 유치의 비하인드 스토리 외에 현대자동차의 상징과도 같은 ‘포니 개발사’에 대한 언급도 했습니다. 엔진 등 주요 부품을 일본 미츠비씨 것을 사용하는 아픈 사실을 쿨하게 인정하고 향후 점진적으로 국산화할 것을 다짐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당시 포니는 한 마디로 ‘국산 자동차’, ‘수출’이라는 상징성을 지닌 자동차였습니다. 포니의 위상은 당시 각급 학교 교과서에 수출 선적의 사진 하나만으로 설명이 가능했습니다. 박정희 정부 시절에는 요즘 북한처럼, 수출은 선이고 수입은 악이라는 정부의 정책이 시행되던 시절이었습니다. ‘수출 자동차’라는 국뽕을 교과서에 실은 것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당시 정주영 창업주의 대담이 이상하게도 기억이 또렷한 이유는 당시의 한일 경제적 위상과 자동차 산업의 위상이 상전벽해가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 대담에서 정주영 창업주는 요즘 말로 미츠비씨자동차를 롤모델로 인정했습니다. 일본이 하면 우리도 한다, 일단은 미츠비씨의 엔진 등 주요 부품으로 출범하지만, 언젠가는 우리도 자체 엔진을 개발할 수 있다, 현대는 부채가 많지만 미츠비씨처럼 벌어서 갚으면 된다, 라는 일련의 멘트가 오랜 세월이 지나 마침내 실현이 되었다는 점에서 정주영 창업주의 대단한 경영능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포니의 역사라고는 하지만, 실은 흑역사도 존재합니다. 해외시장을 막은 정부 정책에 힘입어 내수시장을 발판으로 영업이익을 축적하여 덩지를 키웠다던가, 소형차 엔진을 준중형차, 심지어 중형차에 탑재한 신모델로 국내시장에서 막대한 돈을 긁어모았다던가 하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운 흑역사를 확정하는 사실입니다. 현대자동차가 포니를 통하여 국민에게 신세진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한편, 포니보다는 약간 떨어지는(?) 등급의 차량으로 활약한 자동차가 있었으니, 그것은 브리사입니다. 당시 현대자동차의 라이벌은 후일 대우자동차로 변신한 새한자동차, 그리고 기아자동차가 있었는데, 브리사는 당시 기아자동차의 간판 모델이었습니다. 1970 ~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자동차의 절대 다수는 포니이고, 대우자동차의 맵시와 더불어 기아자동차의 브리사가 양념격으로 소수의 점유율로 등장함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당시 포니나 맵시에 비하여 브리사는 사이즈가 작았는데, 그 시절에도 포니나 맵시는 A급이면 브리사는 B급 정도로 열등재 취급을 받았습니다. 요즘에도 ‘그돈씨’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는데, 그 시절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돈을 더 주고 포니를 사는 것이 낫다, 라는 말이 일상에 널리 퍼졌습니다. 그럼에도 브리사는 뭔가 아담하고 아기자기한 맛은 있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택시로 전용되는 차량이 판매고가 높은 경향이 있는데, 당시 택시차량으로는 압도적으로 포니의 비중이 높았습니다. 그 시절부터 현대의 강세가 출발한 셈입니다.


포니의 성공신화는 쭈욱 이어졌습니다. 그 이후 포니는 포니엑셀, 엑셀, 그리고 엑센트로 이어지면서 꾸준히 베스트셀러로 등극했습니다. 포니라는 소형차 외에도 소나타라는 중형차, 아반테라는 준중형차의 간판을 내세워서 각각의 시장에서도 현대의 강세는 아직까지 이어졌습니다. 대우가 망하고 기아도 망하는 와중에 현대의 고속 성장이 이어졌습니다. 물론 그 와중에 현대가 기아를 흡수합병했습니다. 누가 뭐래도, 실은 뭐라 할 수도 없지만, 오늘의 현대를 만든 것은 포니의 힘이었습니다. 그리고 비록 시장에서는 포니에 패했지만, 기아의 성장에 밑거름이 된 것은 단연 브리사의 힘이었습니다.


당초에 현대가 자동차 신모델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미국 포드자동차의 집요한 방해공작은 유명합니다. 현대가 자동차 신모델을 개발한다고 했을 때 비웃은 사람들도 부지기수입니다. 마치 국산전투기를 만든다고 했을 때 비웃은 사람들이 넘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포니, 그리고 브리사의 역사를 보면, 성경 욥기의 그 유명한 구절, ‘시작은 미약했으나 나중에는 창대하리라.’라는 것이 가슴에 꽂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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