世有伯樂, 然後有千里馬
지금도 고교 교과서에 ‘한문’ 과목이 있는지 모르겠지만 제가 다니던 고교 시절에는 ‘한문’ 과목이 있어서 중국의 당송팔대가 등 유명 문인의 글이 실려 있었습니다. 그중에서 아직까지 기억하는 명문이 있으니, 한유의 잡설(雜說)입니다. 워낙 유명한 글이기에 한국의 현대 교과서에서도 소개된 것입니다. 위 문장은 잡설의 맨 첫 구절입니다. 백락(伯樂)은 훌륭한 말을 키우는 사람으로, 잡설에서는 뛰어난 인물에 비유되는 천리마를 알아보는 안목과 키우는 인물로 소개됩니다. 한유는 자전적인 비유를 통해서 유능한 인물인 자신이 비루한 직위에 있음을 한탄합니다. 천리마인 자신을 알아주고 키워주는 백락과 같은 인물이 없음을 한탄하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의문이 있습니다. 낭중지추(囊中之錐)라는 말이 있듯이, 본인의 능력이 출중하면 세인은 자연스럽게 알아채기 마련이며 유능한 인물은 어떤 경로로든 기회를 받기 마련입니다. 자신을 천리마라 비유하면서 백락의 존재를 한탄하는 것은 전형적인 ‘남탓’입니다. 그리고 한유 자신도 당대에도 문인으로 제법 명성이 있었습니다. 흔히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카프카, 멜빌, 포 등도 당대에는 나름 명성이 있었습니다. 비록 사후에 초대박이 터졌다는 불운(!)이 있었을 뿐입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잡설의 문제는 천리마의 자질이 있어도 준마 또는 범마로 머물고 싶어하는 경우를 외면한 점입니다. 자질이 출중해도 강호에 출정하기를 거부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입신을 포기하고 평범한 인생을 선호하는 경우도 얼마든지 존재합니다. 물론 십리마나 백리마에 불과함에도 천리마라 과대망상하는 경우도 존재합니다.
바람이 머물다 간 들판에
모락모락 피어나는 저녁 연기
색동 옷 갈아입은 가을 언덕에
빨갛게 노을이 타고 있어요
허수아비 팔 벌려 웃음짓고
초가지붕 둥근 박 꿈 꿀 때
고개숙인 논밭에 열매 노랗게 익어만 가네
https://www.youtube.com/watch?v=eZFGDppdWp4&list=RDeZFGDppdWp4&start_radio=1
가을 날 노을이 지는 농촌 들판의 풍경을 마치 그림을 그리듯이 친근감이 넘치는 따뜻한 미소로 묘사를 했습니다. 언어조탁 자체가 발군입니다. 곡 이전에 가사가 완벽한 동시입니다. 실은 동시를 넘어 성인들의 세계에서도 통용될 수준의 훌륭한 서정시입니다. 정지용 시인의 ‘향수’에 비견될 수준의 대단한 묘사이기도 합니다. 적어도 한유가 지적한 천리마 급의 인재가 쓴 서정시입니다. 카프카처럼 일과 문학을 병행해도 무방할 수준입니다. 가사도 강호에 출정하지 재야의 초고수의 초절정 내공인데, 곡도 아름다운 선율로 장식을 했습니다. 도무지 동요의 수준이 아닙니다. 다른 분은 달리 평가할 수도 있지만, 적어도 제 눈과 귀로 겪은 그 어떤 동요도 바로 이 ‘노을’을 능가하지 못합니다. 한국 동요 역사상 최고 명곡입니다.
이 곡은 MBC가 ‘창작 동요제’를 개최하면서 응모한 곡입니다. 아마도 지하에 있는 한유가 보았다면, MBC를 백락이라 극찬했을 것이고 작사가 및 작곡가 모두를 천리마라 칭송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의 추세로는 백락은 물론 천리마도 더 이상 나오기 어려운 비극적인 상황이 이어질 듯합니다. 어린이 프로그램은 ‘돈이 되지 않기에’ 방송국에서 편성 자체를 하지 않으며, 그 이전에 출산률이 망국 수준이기 때문입니다. 관제 반공교육을 강제하던 박정희 정부 시절에도 ‘어린이는 나라의 기둥’이라는 구호가 정부의 교육목표였습니다. 출산률 억제가 정부 시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출산된 어린이는 대접을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출산률을 제고하는 최근에는 진보, 보수 정부를 막론하고 어린이에 대한 캠페인 자체가 없습니다. 2030세대의 ‘영포티 비하’와 젠더갈등이 오히려 불이 타고 있습니다.
현실의 암울한 상황이 역설적으로 ‘노을’ 속의 맑고 깨끗한 풍경과 선율이 빛을 발합니다. 이제는 동요 창작제는 꿈도 못꾸는 시대입니다. 역주행을 제대로 보여주는 걸작 동요 ‘노을’의 역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