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자가 미녀를 얻는다.
짚신도 짝이 있다.
요즘에 거의 보기 어려운 말입니다. 그러나 1990년대까지만 해도 윤다훈의 출세작 ‘세 친구’의 아이코닉한 유행어 ‘작업 들어간다!’로 상징이 되는 남자의 돌격(또는 ‘작업’)이 지극히 정상적인 구애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마음에 들지 않는 남자로부터의 돌격은 상대방인 여자에게는 불편함을 넘어 모욕감을 느끼는 상황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고백공격’이라는 신조어가 생성되었고, 나아가 ‘스토킹범죄’라는 범죄까지 제정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이전에 바라보는 것을 ‘시선강간’이라고 부르면서 불쾌해하는 여자들이 늘면서 남자들의 돌격(!)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예로부터 여자는 꽃, 남자는 나비로 비유되어 왔는데, 나비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꽃이 마다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데, 마냥 환호작약하는 것도 이상합니다. 여자의 거부는 진짜 거부일 수 있음에도, 자신들의 고백이 거부당하자 앙심을 품고 여자를 험담하고 신체에 위해를 가하는 경우도 존재했던 것이 엄연한 사실입니다. 거부 자체는 인간으로서의 권리일 수 있음에도 거부에 앙심을 품고 위해를 가하는 것은 일종의 보복범죄입니다. 실은 이렇게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는 것은 지구촌의 보편적 양상이기도 합니다. 심지어 이슬람 사회에서도 여자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반전은 영화나 드라마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세상살이에도 반전이 존재합니다. 그 반전의 증거가 바로 이 최양락의 ‘도시의 사냥꾼’입니다.
요즘에는 세상만사가 불편한 ‘프로불편러’가 많지만, 적어도 1990년을 전후해서는 남자가 여자에게 구애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주었습니다. 무려 공중파에서 ‘작업’이라는 멘트가 담긴 시트콤이 인기를 누렸고, 코미디 프로그램의 콩트가 인기를 누렸습니다. ‘도시의 사냥꾼’은 제목 그대로 최양락이 여자 사냥꾼으로 분해서 실패하는 상황을 희화화하였습니다. 정도가 심한 경우가 문제인 것이지 인간을 포함하여 수컷 동물의 암컷 동물에 대한 구애는 원시시대부터 수천 년간 이어 온 본능적인 행동이기에, 이를 코미디로 형상화하는 것은 크게 무리한 발상은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은 코미디 프로그램 자체가 사망선고를 받은 상태지만, 설사 TV에서 방영된다고 하더라도 불편함을 쏟아 낼 사람들이 넘치는 세상입니다.
최양락이 한창 주가를 올릴 1990년 전후에는 콩트형식의 주말 코미디쇼가 주가를 올렸습니다. 그 각각의 꽁트의 주인공 내지 주연배우격으로 활동한 심형래, 김형곤, 최양락 등은 그 인기를 바탕으로 야간업소 쇼나 CF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이들이 주인공격으로 출연한 콩트물 상의 인물을 ‘코너주’라 했는데, 코너주가 되면 부와 명예를 쥐는 대단한 자리였습니다. 그 시절 초등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이나 ‘존경하는 인물’로 심형래가 꼽히던 시절이었습니다. 최양락은 심형래나 김형곤에게는 밀렸지만, 꾸준히 코너주로 맹활약을 했습니다. 그중에서 대표적인 것이 바로 이 ‘도시의 사냥꾼’입니다. 최양락은 데뷔 이래 아직까지도 저와는 동향인 충청도 사투리를 트레이드마크로 내세워서 더욱 정감이 가는 인물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XUgdm2q-HHo
최양락은 코너주로 활약하면서 지속적으로 전유성과 호흡을 맞췄습니다. 그 이전에 최양락은 물론 그의 부인 팽현숙 스스로도 전유성을 스승이자 동료, 그리고 친구로 부르는 사이이기에, 동반출연은 어쩌면 필연적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코너주보다는 조연으로 그리고 아이디어뱅크를 자처하는 전유성의 입지 때문에 이해관계가 얽힐 이유 자체가 없다는 이유도 한몫 했습니다. 그래서인지 전유성이 작고할 때까지 최양락과는 평생 영혼의 파트너임을 세상이 아는 사이였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v_mvtGfxft4
그러나 지금은 진영, 젠더, 그리고 세대 간의 갈등에 더하여 인종, 국가 간의 갈등이 폭발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뉴스만 틀면 이들 갈등에 대한 소식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역사는 전진한다는 보편적인 가치관마저 흔들리는 상황입니다. 인간의 영혼은 갈등보다는 감동의 상황에서 성숙한다는 평범한 이치가 허망한 순간이기도 합니다. 그럼에도 평생 남을 웃기던 최양락이 전유성의 별세 이후 영결식과 장례식에 끝까지 자리를 하면서 굵직한 눈물을 흘렸던 장면은 뜨거운 감동을 주었습니다. 혐오보다는 웃음, 그리고 감동을 주는 세상이 되었으면 하는 소망을 적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