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태일 평전’, 그리고 어느 소설가의 발언>

by 성대진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1971. 4. 27. 제7대 대선에서는 낯선 이름의 인물이 쟁점이 되었습니다. 그는 전년도인 1970. 11. 13.에 분신자살한 전태일이었습니다. 당시 신민당 김대중 후보의 발언이 외신을 비롯하여 국내 여론을 흔들었습니다. ‘전태일씨의 분신은 결코 일개 피복 직장 노동조건에 대한 반항이 아니라 현 정권의 반근로자적 노동정책에 대한 항의이며, 오늘의 절망에 찬 사회현실에 대한 일대 경종이라고 반성해야 한다.’ 그런데 막상 전태일이 분신의 고통 속에서도 외쳤던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는 내용은 대선 이후에도 노동현장에서는 반영이 되지 않았습니다. 박정희 정부의 고도성장 뒤에는 이렇게 노동탄압의 아픔이 있었다는 것은 이제는 누구나 아는 상식입니다. 세상에 밝은 면이 있다는 것은 어두운 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호수의 백조의 우아한 자태를 유지하려면 물밑에서 쉴 새없이 요동치는 백조의 발이 있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세월이 쏜살같이 흘렀습니다. 대영제국의 영광, 그리고 팍스 아메리카나의 영광이 각각 쇠락한 현장에는 실업의 아픔이 있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이라는 세기를 호령했던 나라의 자존심은 실업 문제로 무너졌습니다. 영국은 브렉시트로, 미국은 관세전쟁으로 각각 과거의 영광을 되돌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은 이미 실패한 것으로 판명이 났고, 관세전쟁은 실패과정에 있습니다. 슬프게도 그 누구도 미국의 관세전쟁을 성공할 것으로 예상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실업, 즉 고용의 문제를 두고 국가 차원에서 대응하는지 이유를 묻지는 않습니다. 누구나 알기도 하고 또한 너무나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선진국이니 후진국이니 하는 구분의 기본은 1인당 GDP입니다. GDP의 산출은 기업활동이 근간이며, 그 기업활동의 단위가 노동이기 때문입니다.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20세기 최대 경제학자라 꼽는 케인즈의 명저의 제목이 ‘고용, 화폐, 이자율에 대한 일반이론’인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노동 문제는 단지 국민경제의 요소로서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국가의 소득재원인 법인세와 소득세, 그리고 부가가치세의 세원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국방의 근간인 군수물자의 취득 원천이기도 합니다. K-무기의 산실도 기본적으로 군수기업의 노동자가 있어야 가능한 답변입니다. 노동 문제, 하면 이상하게 고용노동부, 최저임금, 노동조합 등의 문제로만 한정하는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노동의 문제는 기업의 존립근거이기도 하며, 국가경제활동의 터전이기도 합니다. 실은 대법원은 국가기관 구성원인 공무원을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보기도 합니다. 그리고 1인당 GDP의 산출 근거가 기본적으로 근로소득으로 발생한 금전의 소비활동이기도 합니다. 노동이란 광의로 보면, 유상으로 활동하는 모든 인간활동으로 정의할 수 있기도 합니다.


○다음은 김규나라는 어느 소설가의 발언입니다. 요지는, ‘전테일 평전’은 좌파의 저서이기에 문제가 많다, 는 내용입니다. 소설가는 타인의 글을 많이 읽어야 완성체로 진화합니다. 당송팔대가의 하나인 구양수가 삼다(三多), 즉 다독(多讀), 다작(多作), 다상량(多商量)을 유달리 강조한 이유가 있습니다. ‘전태일 평전’을 단지 좌파서적으로만 본다는 것은 노동의 문제가 국민경제 전체의 문제라는 점을 간과한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삼다를 구비하지 못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천하의 미국 대통령도 러스트 벨트의 실업자, 그리고 콘 벨트의 옥수수와 대두 농사를 짓는 농부의 외침을 무시할 수는 없습니다. 대두의 가격이 폭락했다는 농부의 항의에 트럼프는 화급히 놀랐다는 뉴스를 전 세계가 봤습니다.


○‘전태일 평전’은 ‘노동 문제’라는 동일한 컨텐츠를 노동의 시각에서 강조한 것이고, 동일한 컨텐츠를 자본의 시각에서 강조한 것은 ‘인사관리’입니다. 노동이란 제공자와 수용자가 존재하는 컨텐츠입니다. 노동의 시각에서 볼 수도 있고 자본의 시각에서 볼 수도 있는 것이 지극히 당연합니다. 자신을 우파라 생각한다면 김규나 작가는 좌파 시각의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전태일 평전’을 연구해야 합니다. 좌파가 나쁘다면 왜 나쁜지, 그리고 왜 브렉시트의 비극과 러스트 벨트의 실업이 발생했으며, 노동을 살리고 기업을 살리는 방안을 연구하고 해답을 제시해야 합니다. 좌파가 나쁘면 노동도 배제하고 굶겨 죽이는 것이 정의는 아닙니다. 현대차 노조가 밉다고 현대차 노조원을 미워하고 해고하는 것은 정답이 아닙니다. 기업을 구성하는 노동 자체는 가치중립적입니다. 노동자 중에서도 우파를 넘어 극우도 존재합니다.


○전술한 대로, 노동은 국민경제의 근간입니다. 노동을 배제하면 국가를, 그리고 국민경제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우파라 자부한다면 좌파를 혐오할 것이 아니라 좌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여 우파의 길로 나아갈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반대로 좌파를 지향한다면, 우파의 문제점을 극복하고 좌파의 지평을 넓혀야 합니다. 이런 해결점은 이미 춘추시대의 손자가 ‘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전백승’이라는 말로 제시한 바가 있습니다. ‘전태일 평전’이 문제라 비난하기 보다는 ‘전태일 평전’을 능가하는 저서를 집필하던가, 그 문제점을 지적하여 해결책을 제시하여야 합니다. 정통보수와 극우의 차이는 대안의 제시 여부에 있습니다. 김규나는 그냥 극우에 불과합니다. 오로지 혐오만 존재하며, 미래에 대한 효율적 대처 이전에 아무런 대안의 제시가 없기 때문입니다.

<김규나 작가>

지하철 타고 시내 나가는 중. 옆자리에서 종이책 열독하는 남자. 무슨 책인가 보니 <전태일 평전>. 이 나라 대중은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 모름. 좌파가 지성인 줄. 더 큰 문제는 자신이 좌파인 줄도 모름. 지극히 정상 사고를 하는 사람인 줄 착각함. 내가 이래서 나라 정상화 될 때까지는 최소한 우리나라 저자의 책은 읽지 말라는 거. 책이라고 다 좋은 거 절대 아님. 독보다 무서운 책이 사방에 널렸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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