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그 시절의 아련한 소묘>

by 성대진

영화의 품격은 리얼리티에 있습니다. 리얼리티는 리얼리즘과는 다른 차원의 영화의 가치이며, 영화를 감상하는 관객에게 선사하는 선물이자 예의입니다. 그 유명한 헐리우드의 레전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고증에 철저하고 리얼리티를 중시하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오락영화로 명성을 쌓은 스필버그 감독이지만, 그 오락영화에도 단순히 재미만을 추구한 것이 아니라 리얼리티를 베이스로 했습니다. ‘블랙호크 다운’을 연출한 리들리 스콧 감독이나 ‘히트’에서 거리 총격전의 생생한 현장감, 그리고 ‘존 윅’에서 실제 장전총알수 그대로 탄창교체 장면을 연출한 스턴트맨 출신의 채드 스타헬스키 감독이 구현한 리얼리티는 영화 감상의 맛을 높였을 뿐만 아니라 영화 자체의 품격을 높였습니다.



영화 ‘친구’는 대사 하나하나가 무수히 패러디를 낳았고, 심지어 정치권에서도 인용할 정도로 대박영화였습니다. ‘친구’가 그렇게나 국민영화로 고양된 것은 당연히 1970 ~80년대의 상황을 생동감있게 묘사하여 그 시대를 살았던 관객들의 공감을 쌓았기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에서 가장 공감을 받은 장면으로 저는 바로 이 교사의 폭행 장면을 꼽고 싶습니다. 교육을 빙자하여 자행된 야만적인 폭행은 그 시절 교사의 부끄러운 자화상입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SFiMZqJI9Ok

제가 직접 목격한 폭행 장면도 생생합니다. 봉걸레는 기본이고, 쇠파이프, PVC파이프, 골프채, 싸리 등으로 무수히 두들겨 맞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나 맞을 이유가 없음에도 그 시절의 학생들은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았습니다. 지금도 인터넷 게시판을 보면 맞았던 생생한 묘사가 넘칩니다. 그런데 맞았다는 사람의 고백은 차고도 넘치는데, 왜 그렇게나 두들겨 팼던 사람의 고백은 없는지 의문을 넘어 비통의 감정을 느낍니다.


그 시절에 맞은 급우들은 상당수가 비행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도 청소년범죄가 언론에서 무수히 등장했습니다. 범죄까지는 아니라 해도, 술 마시고 뻔뻔하게 야간자습교실에 들어오거나 길거리에서 극장에서 담배를 피우고 유원지 등에서 이성 간에 불미스러운 행동을 했던 급우들은 징계를 받는 것은 실은 당연을 넘어 필연적이기까지 했습니다. 본인의 즐거움을 위하여 타인에게 위해를 가하고 불이익을 초래한 비행은 제재가 없으면 질서를 무너뜨리게 됩니다. 그러나 징계행위가 아닌 사감에서 비롯된 폭행으로 그 시절의 학생들은 엄청난 고통을 감내하여야 했습니다. 조그만 잘못으로도 봉걸레자루로 피떡이 지도록 두들겨 맞는 광경을 무수히 목격했습니다.



그 시절에는 학교에서, 군대에서, 그리고 운동장에서 무수히 자행된 폭행을 자연스러운 행동으로 인식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때리면 당연히 맞아야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그래서 ‘친구’ 속에서 김광규의 폭행이 아련한 추억으로 그려졌던 것입니다. 물리적 폭행만이 아니라 ‘느그 아부지’를 함부로 말하는 언어폭력도 자행되었던 것이 그 시절의 풍경이기도 했습니다. 영화 ‘친구’는 다양한 추억을 소환하는데, 그 중에서 김광규의 폭행 장면은 뺄 수가 없는 그 시절의 풍경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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