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마라.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이 말을 들어봤을 것입니다. 다음 대법원 판례(대법원 2011.2.10.선고 2010도13284 판결)가 위 말에 해당하는 전형적인 사례입니다. 소박한 시민도 국민연금 보험료는 사용자와 근로자가 각각 절반씩 납부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납부하는 금액의 명칭이 사용자의 경우에는 ‘부담금’이라 하고, 근로자의 경우에는 ‘기여금’이라 합니다. 그 명칭 자체가 사용자의 희생을 전제로 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국민연금은 그 납부액 전액을 근로자가 취득하기 때문입니다. 사용자는 남(근로자)에게 부담을 질 이유가 없음에도 국민연금법이라는 재산상 부담을 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돈은 궁극적으로 근로자가 가집니다.
○아무튼 사용자는 매월 자신이 부담하는 부담금 외에 근로자들의 임금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중 근로자가 부담할 기여금을 원천공제하여 근로자를 위하여 보관하고,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위 보험료를 납부하여야 할 업무상 임무를 부담하게 됩니다. 그런데 위 대법원 판례에서 피고인인 사용자는 그 기여금 부분을 ‘꿀꺽’하였습니다. 대법원은 타인의 돈, 즉 근로자의 기여금을 ‘꿀꺽’했기에 횡령죄가 된다고 판시하였습니다. 얼핏 보면 근로자의 피같은 국민연금 기여금을 횡령한 파렴치범이 사용자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반전이 있습니다.
○정도의 차는 있지만, 대다수의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는 일정한 유대관계가 있습니다. 아무리 막장 사업주라 하더라도 임금을 줘야 한다, 그리고 국민연금 보험료를 비롯한 사회보험료는 납부하여야 한다는 것은 인지하고 있습니다. 법률적인 근로계약관계 이전에 의리와 신의 문제인 것도 인지합니다. 그럼에도 위 사례의 경우처럼 국민연금 보험료를 횡령하는 경우는 사업장이 적자가 누적되어 정상적인 운영이 어려운 경우입니다. 직원들이 월급을 반납하거나 사업체에 금전을 대여하는 경우, 나아가 여기저기 사채업체에 급전을 빌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경리나 자금을 담당하는 근로자가 이런 사정은 이심전심으로 알기 마련입니다. 실제로도 최후의 시점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회보험료를 미납하고 사업경비로 쓰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아마도 판례 속의 사례는 사용자가 근로자에게 이해는 물론 용서를 받지 못한 상황이 아닌가 합니다. 망해가는 사업장이라도 일부 야박한 근로자가 아니라면 사용자를 용서하는 경우가 상례입니다. 물론 어제까지 동고동락했던 사용자를 인격비하하는 근로자도 부지기수이기는 합니다. 다음 대법원 판례는 두 가지를 깨우쳐 줍니다. 첫째는 법리적인 면으로서, 사용자가 근로자의 기여금을 꿀꺽하면 횡령죄가 된다는 것이며, 둘째는 실질적인 면으로서, 이렇게 사용자가 기여금을 횡령하는 상황은 대부분 극한적인 상황으로서, 해당 사업체는 거의 망하기 직전의 상태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사업체를 경영하는 평범한 사용자는 죄의식을 갖고 대부분은 사회보험료를 정상적으로 납부하고 있으며, 최후의 수단으로 그 사회보험료를 운영자금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교훈이 실제가 되는 현장입니다.
<국민연금법>
제3조(정의 등) ① 이 법에서 사용하는 용어의 뜻은 다음과 같다.
중략
11. “부담금”이란 사업장가입자의 사용자가 부담하는 금액을 말한다.
12. “기여금”이란 사업장가입자가 부담하는 금액을 말한다.
제88조(연금보험료의 부과ㆍ징수 등) ①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연금사업 중 연금보험료의 징수에 관하여 이 법에서 정하는 사항을 건강보험공단에 위탁한다.
② 공단은 국민연금사업에 드는 비용에 충당하기 위하여 가입자와 사용자에게 가입기간 동안 매월 연금보험료를 부과하고, 건강보험공단이 이를 징수한다.
③ 사업장가입자의 연금보험료 중 기여금은 사업장가입자 본인이, 부담금은 사용자가 각각 부담하되, 그 금액은 각각 기준소득월액의 1천분의 65에 해당하는 금액으로 한다.
<대법원 판례>
구 국민연금법(2009. 5. 21. 법률 제9691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90조 제1항 , 제95조 제1항, 구 국민연금법 시행령(2010. 8. 17. 대통령령 제22347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64조 등의 규정에 의하여 사용자는 매월 임금에서 국민연금 보험료 중 근로자가 부담할 기여금을 원천공제하여 근로자를 위하여 보관하고, 국민연금관리공단에 위 보험료를 납부하여야 할 업무상 임무를 부담하게 되며, 사용자가 이에 위배하여 근로자의 임금에서 원천공제한 기여금을 위 공단에 납부하지 아니하고, 나아가 이를 개인적 용도로 소비하였다면 업무상횡령죄의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대법원 2011.2.10.선고 2010도13284 판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