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울 때 가장 먼저 배우는 말 중의 하나가 ‘빨리빨리’입니다. 한국은 스피드에 진심인 나라입니다. 신호등이 변하면 경적을 요란스레 울리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서양인들이 한국에 와서 식사가 나오는 속도를 보도 깜짝 놀랍니다. 못하는 것은 참을 수 있어도 느리면 용서가 안 되는 나라가 한국입니다. 빨리빨리는 제조업의 융성 등 긍정적인 면이 많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그렇듯이 단점도 존재합니다. 학부모의 교사에 대한 민원도 그 단점의 대표적 사례입니다.
○유오성과 장동건의 레전드 작품 ‘친구’에서는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 대한 시그니처 대사가 등장합니다. ‘느그 아부지 뭐하시노?’ 김광규의 명품연기가 빛났던 이 장면은 1970년대에 만연하던 교사의 학생처벌의 생생한 장면을 고발하는 동시에 교사가 학부모를 두려워하지 않았던 당시의 상황도 아울러 보여줍니다. 그 시절은 교사가 교실에서 왕이던 시절이었습니다. 교사가 ‘하자!’ 하면 그냥 따르는 것이 정상이었습니다. 한마디로 교사의 말이 법인 시절이었습니다. 소풍, 운동회 등에 대하여 학부모의 민원이란 상상 자체가 되지 않았던 시절입니다. 그러나 2026년 현재는 소풍, 운동회, 수학여행 등이 학부모의 민원으로 사라진 학교가 수두룩합니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알 수가 없습니다.
○다음은 악성민원의 현장입니다. <기사>는 악성민원으로 성악 강사의 채용을 취소했다고 전합니다. 그 악성민원의 이유가 가관입니다. '한 학부모의 자녀가 해당 실기 수업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을 그 이유로 들었는데, 어느 학생의 과외 교사의 교습법과 다르다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교육은 보편성을 추구해야 합니다. 특정 학생의 ‘입맛’에 따를 이유가 없습니다. 학부모가 자신의 입맛을 선호한다면 학교를 자퇴시키고 개인교습을 하던가 아니면 전학을 시키면 됩니다. 왜 학교에 교사의 채용을 이래라저래라 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슬픈 교권추락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영화 ‘친구’에서의 현실이 문제이기는 하지만, 교사의 기를 죽이고 교권을 추락시키면 교실은 붕괴되고 교육도 붕괴됩니다.
○교권 걱정도 걱정이지만, 법률적인 측면에서도 문제입니다. <기사>에서는 ‘세종시에 있는 세종예술고등학교가 합격을 공식 통보하고 근로 계약서까지 작성한 성악 강사의 합격을 돌연 취소했다’고 사정을 전합니다. 학교는 학교장 직인을 찍어 개학 후 계약서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이유로 근로계약이 성립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듯합니다. 그런데 대법원(대법원 2000. 11. 28. 선고 2000다51476 판결,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0다25910 판결 등)은 이러한 경우를 채용내정으로 보면서 근로계약이 이미 성립하였다고 봅니다. 학교장 직인이 없다고 근로계약이 성립하지 않은 것은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위 판결에서 대법원은 ‘채용내정이란 본채용 전에 채용할 자를 미리 결정하는 것으로서 그로 인해 사용자와 채용내정자 사이에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보기 위해서는 채용내정 통지 및 최종합격자 통보 등을 통해 사용자의 채용내정자에 대한 채용의사가 외부적·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표명되었을 것이 요구된다.’라고 판시합니다. 학교장 직인을 찍어 개학 후 계약서를 주겠다고 약속했다는 사실은 이미 채용의사가 외부적·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표명된 상태입니다. 채용내정의 취소는 해고에 해당합니다. 채용내정에 대한 대법원의 판례(대법원 2000. 11. 28. 선고 2000다51476판결,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0다25910 판결 등 참조)는 일관되게 ‘근로계약의 체결에 있어 청약의 유인에 해당하는 사용자의 모집에 대해 근로자가 서류전형 및 면접 절차에 응모, 응시하는 것은 근로계약의 청약에 해당하고 이에 대해 사용자가 서류전형 및 면접 절차 등을 거친 후 행하는 채용 내정 통지(최종 합격 통지)는 그 청약에 대한 승낙으로서 이에 따라 채용 내정자와 사용자 사이에 해약권을 유보한 근로계약이 성립한다고 할 것이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대법원의 판례이론을 수용하여 서울고등법원(서울고등법원 2020. 4. 22. 선고 2019누58034 판결 참조)은 ‘사용자가 채용 절차를 거친 후 지원자에게 최종 합격 통지를 한 것은 근로계약에 대한 승낙의 의사표시라고 봐야 한다는 점에서 최종 합격 통보가 채용 내정자에게 도달하는 시점에 근로계약이 성립하게 된다.’라고 판시하였습니다. 이미 해당 강사에게 통지한 점으로 보아 근로계약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사원 모집 광고 또는 면접 시의 구두 약속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근로계약에 있어서 청약의 유인 또는 준비 단계에 불과하고 그 자체로서 근로계약의 내용이 된다고 볼 수는 없는 경우(서울행정법원 2009. 1. 20. 선고 2008구합24712 판결 참조)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기사>
세종시에 있는 세종예술고등학교가 합격을 공식 통보하고 근로 계약서까지 작성한 성악 강사의 합격을 돌연 취소해 논란을 샀다. 11일 세종시교육청에 따르면 지난해 11월 전문교과 실기강사 채용 공고를 낸 세종예고는 지난 1월 서류·면접시험을 모두 통과한 성악 실기강사 지원자 A씨를 최종 합격자로 발표했다.
지난 2월 학교 측이 마련한 강사 연수에 참석한 A씨는 근로 계약서까지 작성했고, 학교 측은 학교장 직인을 찍어 개학 후 계약서를 주겠다고 약속했다. 그런데 지난 6일 학교 측은 A씨에게 돌연 출강이 어려울 수 있다는 연락을 했고, 사흘 뒤에 합격을 취소하겠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A씨는 "학교 측으로부터 합격 취소 사유로 '한 학부모의 자녀가 해당 실기 수업을 받는 것을 거부하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고 주장했다.
단 한 차례의 수업도 진행하지 않은 상태에서 학부모 민원을 이유로 정식 채용 공고를 통해 뽑은 강사의 합격을 취소한 것이다.
https://n.news.naver.com/mnews/article/001/0015951057
<대법원 판례>
근로계약이란 근로자가 사용자에게 근로를 제공하고 사용자는 이에 대하여 임금을 지급하는 목적으로 체결된 계약으로 기본적으로 낙성·불요식의 계약이며, 채용내정이란 본채용 전에 채용할 자를 미리 결정하는 것으로서 그로 인해 사용자와 채용내정자 사이에 근로관계가 성립했다고 보기 위해서는 채용내정 통지 및 최종합격자 통보 등을 통해 사용자의 채용내정자에 대한 채용의사가 외부적·객관적으로 명확하게 표명되었을 것이 요구된다.
(대법원 2000. 11. 28. 선고 2000다51476 판결, 대법원 2002. 12. 10. 선고 2000다25910 판결 등)